[특집-창간16주년] 국내 첨단 밸리를 가다 Ⅱ.. 테헤란밸리

 「서초역에서 삼성역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삼성역까지 10㎞ 남짓 쭉 뻗은 8차선 도로를 가다보면 종종 현기증을 느낀다. 거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높다란 건물들 때문이다. 건물에 입주해 있는 업체의 면면 역시 건물의 모습 만큼이나 웅장하다. 마천루를 연상케 하는 건물에는 하나같이 쟁쟁한, 국내 정보통신 업계를 대표할 만한 기업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강남지역의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름은 테헤란로. 테헤란로는 지난 70년대 호황을 구가했던 중동지역의 건설특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적인 차원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테헤란로에 소프트웨어·이동통신·네트워크 등 정보통신 관련 업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부터.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1백여개의 크고 작은 업체들이 이 지역을 차지, 「테헤란밸리」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테헤란로는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함에 따라 건설산업의 상징에서 정보통신산업의 중추로 탈바꿈한 셈이다.

 테헤란밸리가 정보통신업체들의 집합장소로 각광받는 것은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사업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는 게 테헤란밸리에 있는 업체들의 설명이다.

 서울역부터 시청을 거쳐 광화문·종로에 이르기까지 사업하기 편리한 시내 중심가는 이미 발디딜 틈이 없어진 상태다. 증권가로 불리는 여의도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반면 테헤란밸리는 빌딩 밀집지역이면서도 교통이 편리하다. 호텔·음식점 등 편의시설은 세미나는 물론 외국인들을 맞아들이는 데도 유리하다. 한국종합전시장(COEX)을 끼고 있어 각종 정보통신 전시회 참여와 관람도 편하다. 빌딩임대료가 상당히 비싼 편에 속하는데도 많은 정보통신업체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통신망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테헤란밸리의 장점이다. 테헤란로를 따라 지하에 매설된 정보통신망은 기업들에 교육사업이나 솔루션 개발 사업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업체들 대부분은 재벌그룹의 정보통신 계열사와 이동통신업체, 외국 유명기업들의 한국지사들. 현대정보기술·한솔텔레컴·LG텔레콤·삼성SDS·LG소프트·삼성전자 등 그룹 계열사, 마이크로소프트·인포믹스·사이베이스·시스코시스템즈·베이네트웍스·자일랜 등 외국업체, 서울이동통신·나래이동통신 등 이동통신업체, 아이네트·다우기술·비트컴퓨터 등, 정보통신업계의 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테헤란밸리에서 국내 정보통신의 흐름을 만들고 바꾸기도 하며 새로운 산업지도를 그리고 있다.

 테헤란밸리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각종 협회와 기관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전자진흥회·과학기술총연합회·특허청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을 주도할 소프트웨어 진흥원도 이 자리에 설립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이곳 테헤란밸리가 정보통신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삼성멀티캠퍼스·아이네트·비트컴퓨터에서 배출되는 인터넷·통신·컴퓨터 전문가는 이미 1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옥에 티는 항상 있는 법. 테헤란밸리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벤처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다. 벤처기업이 눈독을 들이기에는 부지·건물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벤처기업의 요람이라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와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다. 또 업체들 사이 교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폐쇄환경도 다른 정보통신 단지와는 다른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헤란밸리가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것은 이 지역 업체·기관들이 업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 때문이다. 삼성SDS·아이네트·한국마이크로소프트·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등은 SI·인터넷·소프트웨어·네트워크 분야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으며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만한 힘을 갖고 있다.

 삼성SDS는 우수인력을 기반으로 국내 SI산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전문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인 아이네트는 인터넷산업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벤처기업의 신화를 창조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는 세계를 주름잡는 미국 네트워크 업체 시스코시스템즈의 국내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솔텔레컴·LG텔레콤·SK컴퓨터통신·한국CA·자일랜코리아·삼성전자·사이베이스·한국베이네트웍스·비트컴퓨터·오토데스크코리아·핸디소프트 등 여러 업체들 역시 국내 정보통신산업을 이끌어가는 기둥들이다.

 이들은 모두 국내 벤처기업들의 선망어린 눈길을 받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벤처기업들은 테헤란밸리 입성을 꿈꾸며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