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6주년] 포스트 IMF과제-컴퓨터(HW)

 IMF 사태 이후 국내 컴퓨터업계가 사상 초유의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생사를 좌우할 갈림길에 서 있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에 따른 극심한 판매부진에다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컴퓨터업체들의 재무구조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국내 컴퓨터산업이 일시에 무너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컴퓨터업체들은 그래서 국내 컴퓨터산업 기반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이전에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IMF 이후 컴퓨터업체들은 정리해고, 한계사업 정리, 유관부서 통폐합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통한 살아남기 전략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업체간 전략적 제휴와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등 IMF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섰다. 특히 수출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감으로 PC와 모니터, CD롬 드라이브 등 각종 주변기기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컴퓨터업계를 둘러싼 주변환경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황의 짙은 그림자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컴퓨터업계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PC업계의 경우 그동안 시장확대에 편승해 탄탄대로를 달려왔지만 IMF 한파로 극심한 수요부진에 따른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1, 2년 전까지만 해도 만드는 대로 팔리는 호황을 누렸지만 이제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면서 컴퓨터업계 전체가 장기적인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 PC업계는 급격한 수요확대에 힘입어 연평균 30% 정도의 매출신장을 기록해왔다. 한때 할인판매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구매의욕을 부추겨 목표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IMF라는 특수상황에서는 이같은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컴퓨터업계 관계자들은 사상 최악인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으로 PC사업의 근본적인 구조조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국내 PC업체들은 연간 2백만대의 좁은 내수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출혈경쟁을 벌이면서 매출이 확대되면 될수록 적자폭이 커지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여왔다. 그 결과 팔아도 이익을 내지 못해 PC사업 기반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일반가정과 함께 공공시장에서도 제조원가에 못미치는 덤핑입찰이 만연해 PC업계의 재무구조는 극도의 취약성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재무구조가 취약해지자 금융기관에서의 차입금은 크게 늘어 PC업체들의 사업활동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컴퓨터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불황속에 허덕이고 있는 국내 컴퓨터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수출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포화상태에 직면한 국내시장보다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려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처럼 극심한 내수부진이 지속될 경우 수출로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컴퓨터산업의 회생은 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수출에 주력하지 않고 협소한 내수시장에서 기존의 이전투구식 경쟁을 펼치다가는 공멸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은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최근 컴퓨터업체들이 데스크톱PC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노트북PC나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모니터, CD롬 드라이브,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 롬 드라이브 등을 수출전략상품으로 정해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장기화하고 있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또다른 방안은 군살을 제거하는 과감한 조직개편을 통한 자구책 모색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같은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 컴퓨터업체들은 비용절감을 극대화할 수 있고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확대할 수 있는 형태의 조직정비에 초점을 맞추는 데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는 곧 기업의 운명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조직개편을 통한 구조조정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전자 등 대기업들은 최근 사업 구조조정의 주요 수단으로 회사의 몸집을 줄이기 위해 특정 사업부문을 떼내는 이른바 분사(分社)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서비스와 중대형 컴퓨터 등 몇몇 사업부문에 대한 분사를 추진중이다. 서비스 부문의 경우 이미 분사방침을 확정한 가운데 이를 독립회사 형태로 떼낼 것인지 소사장제로 분리 운영할 것인지 등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현대전자(대표 김영환)는 PC와 중대형 컴퓨터 사업부를 잇따라 분리 독립(멀티캡)하거나 계열사(현대정보기술)로 이관했다.

 생존전략 마련을 위해 최근 컴퓨터업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대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흡수합병을 포함한 전략적 제휴다. 두 기업이 하나로 뭉칠 경우 시장 자체에 엄청난 판도변화를 몰고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컴퓨터업계에서는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적과 동지의 구분없이 파트너 물색에 여념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른바 「적과의 동침」도 과감히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자사의 컴퓨터사업에 도움만 된다면 파트너가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96년에 LG전자와 세계 최대의 컴퓨터업체인 IBM이 전격적으로 제휴해 탄생시킨 LG IBM은 국내 PC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IBM의 뛰어난 기술력과 국내 대표적인 가전업체 가운데 하나인 LG전자의 거대한 유통망을 통합해 국내 PC시장을 공략할 경우 단기간에 PC시장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PC업계에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또 이렇게 탄생한 LG IBM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는 평이 IMF 이후에도 업계 전반에 퍼지자 최근 들어 PC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외 PC업체들간 합작 혹은 제휴를 통해 PC사업을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처럼 국내외 업체간 짝짓기는 선두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당면과제에서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로서는 국내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외국업체들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기도 하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호랑이를 집안에 들여놓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든 생존을 위한 국내외 업체들간 합종연횡이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이지만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합작과 제휴가 이루어져야 하며 국내 PC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내외 업체간 제휴보다는 국내 업체간 비교경쟁력을 통한 제휴가 더욱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마지막으로 올들어 극심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PC업계에 공통적으로 부여된 과제로 물류혁신을 꼽을 수 있다. 치열한 경쟁으로 컴퓨터를 판매해 얻는 이익보다는 자체 소요경비를 줄여 내실을 다지는 것이 적자의 폭을 줄일 수 있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컴퓨터업체들은 매출확대에 기울이는 노력 만큼 금융비용 절감과 더불어 물류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물류혁신은 기존 대량생산 체제 아래서 제품을 만들고 대리점에서 제품을 쌓아 놓고 판매하는 데 드는 경비를 최소화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최근 국내 PC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주문생산방식은 바로 이같은 업체들의 비용줄이기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소비자들이 주문을 통해 제품을 생산할 경우 물류기간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 공장과 대리점에서 재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생산외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또 그동안 국내 유통시장에서 관행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대리점들의 경영난 또한 크게 개선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주문형 PC 생산방식은 정착돼 미국의 델컴퓨터와 컴팩, 일본 도시바 등 세계 유력 PC업체들이 채택해 강력한 마케팅을 무기화하고 있으며 다른 업체들로 급속히 확산될 조짐이다.

 IMF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컴퓨터업계의 이러한 변화 움직임은 결국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방향타를 잡느냐에 따라 이 위기를 극복하고 21세기 정보화 전쟁에서도 버텨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