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너 나가 있어.』
방안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마당에 떨어져 있는 그릇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릇으로 나를 직접 때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서 있는 주위에 던지면서 소리쳤다.
『개새끼, 계집에게 사준 목걸이라니. 그게 어쨌단 말이냐, 새끼야.』
『너 밖에 나가지 못하겠니?』
어머니가 마당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내가 그대로 서 있으면 아버지의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왜 아버지의 분노 대상이 되었을까. 나의 존재가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던가. 그것은 아마 아버지의 열등의식에서 빚어진 자기 학대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 학대의 반작용은 아들을 학대하거나 아내를 학대하는 일로 변질이 되어 나타난다. 취중에 일어나는 아버지의 폭력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에 의미를 붙이기에는 너무나 타성에 젖어 있었고,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지시대로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내가 밖으로 나오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화살을 돌렸다.
『쌍년아. 너는 집구석에서 뭘 하기에 저놈을 노가다판에 내보내냐. 내가 먹을 것을 주지 않든? 내가 노가다판에는 좆빨려고 다니는 줄 알아? 모두 처자식 멕여 살리려고 그라지. 쌍년아.』
어머니는 항상 그렇듯이 아버지의 폭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방어였다. 아버지와 맞서서 욕설을 한다거나 저항을 하면 아버지는 더욱 기가 살아서 날뛰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반응 상태로, 더구나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으면 아버지는 제풀에 죽으면서 조용해지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조금 전에 내가 보여준 것과 같은 당돌한 태도를 보이면 아버지는 더욱 분노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떤 것이 효과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몰린 쥐처럼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공포에 어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무런 저항력이 없이 한 입에 먹힐 수 있는 먹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 느껴질 때 아버지의 분노는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분노는 대관절 어디서 생성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었다. 훗날 나는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도 일종의 정서 불안에서 오는 아버지 나름의 성격으로 판단했다. 한마디로 고약한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