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본문화 개방 대응책 시급하다

 일본문화 개방이 임박한 가운데 벌써부터 상당수의 국내 업체들이 시장개방에 대비해 일본 업체들과 손잡기를 모색하고 있고, 일부 일본 업체들은 한국시장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한 메이저 음반사가 최근 인기 엔카가수를 내세워 한국 작곡가들이 참여한 한국 가요음반을 제작, 발표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한국시장을 겨냥, 잇따라 한국 가요앨범 타이틀을 제작·발표할 계획이며 한국공연도 추진중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게임 분야에서도 그동안은 애니메이션의 경우처럼 국내 업체들이 일본의 하청을 받아 얼굴없는 제품을 공급하거나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것과 달리 올 들어서는 한·일 업체간 제휴가 활기를 띠고 있으며 자본·인력을 분담하는 형식의 공동 게임개발도 제3국 수출 등으로 협력관계가 넓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항간에는 조만간 이뤄질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이와 관련한 선언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말들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을 정도로 일본문화 개방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 같고,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비록 수위를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일본 성인용 PC게임이 심의를 통과하는 등 시험적인 개방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문화 개방에 대해 일본 저질문화의 유입에 따른 청소년 유해 문제를 비롯한 문화 차원의 논의가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과 달리 대중문화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산업」이라는 측면에서의 검토와 대응책 강구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 같다. 일본문화 개방은 곧바로 관련산업의 국내 상륙으로 이어질 소지가 많고 그럴 경우 일본에 비해 규모나 기법을 비롯한 총체적인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국내 문화산업계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인 지적만 무성할 뿐이다.

 우리가 일본문화 개방에 대해 산업적인 측면에서 우려하는 것은 우선 문화상품의 주요 수요층인 청소년들이 일본 상품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데다 국내 관련산업계의 경쟁력이 크게 뒤지기 때문에 자칫 문화산업의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문화에 대해 겉으로는 왜색이라는 이름을 붙여 규제하면서도 실상은 흠뻑 젖어 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특히 청소년층의 경우는 어려서부터 만화에서 애니메이션·게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일본문화를 접해온 터라 일본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게 사실이다.

 이는 일본 업계의 입장에서 시장공략 초반부터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음은 물론 이질감이 적은 탓에 국내 업체들과의 협력이나 경쟁에서 탄력성을 갖출 수 있는 기반이 조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가정용·업소용·PC게임과 애니메이션은 물론 음반과 DVD를 포함한 각종 새 영상물 분야에서 일본의 문화산업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방송과 공연·흥행·출반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과정을 요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인 음반의 경우도 일본은 공개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이 정착돼 있어 이를 통해 끊임없이 상품을 발굴·육성하고 있으며 관련 저작권이나 인세제도도 안정돼 있다.

 우리에 비해 관련산업계가 훨씬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고 상품화의 노하우도 풍부한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쟁력을 견주기가 어려울 정도다. 선진 기획·제작·유통시스템과 노하우로 무장한 일본 관련산업의 국내 진출 가능성에 대비해 지금부터라도 국내 업체들은 체질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화 자체는 감성적일 수 있지만 문화산업은 철저하게 과학적이고 시장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관된 정책과 체계적인 개방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고, 업계는 상업적이고도 투명한 스타시스템 구축과 저작권 개념의 정립 그리고 기획과 마케팅·유통의 과학화·합리화를 통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충격을 완화하고 역으로 일본 등 해외시장 공략의 계기로 삼기 위한 단계적인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