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한글과컴퓨터호가 새로운 항로개척에 성공할 것인가. 「아래아한글 8·15 특별판」 출시와 함께 줄곧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해온 한글과컴퓨터(전하진·이찬진 공동사장)의 행보에 업계는 물론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컴사에 따르면 광복절인 지난달 15일부터 판매된 아래아한글 8·15 특별판이 24일 현재 무려 40만장이나 팔려나갔다. 또 한글날인 오는 9일까지는 50만장을 무난히 돌파, 당초 공언했던 1백만장의 대기록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판매량 집계는 유통재고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오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아래아한글의 상품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퇴출위기에 내몰렸던 아래아한글이 하루에 1만장 꼴로 출고되면서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한컴이 이 제품으로 올해 안에 내수시장 1백만장 판매에 성공한다면 재기의 발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낙관론을 펴기엔 아직 이르다. 한컴은 「한글 사랑」과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 살리기」를 연결해 시장논리보다는 국민정서와 애국심에 호소함으로써 구매자를 설득했다는 점이 우선 한계로 지적된다. 한컴사와의 해프닝 이후 윈도98 출시에 전력투구하느라 잠시 주춤했던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가 MS워드2000으로 다시 한번 파상공세를 펼칠 경우 아래아한글이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절대강자 위치를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컴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전하진 한컴 공동사장은 『앞으로 한컴은 아래아한글의 내수시장 판매에 의존하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해 글로벌 틈새시장을 공략함으로써 제2의 신화를 창조할 것』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한컴사가 좁은 내수시장을 놓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견되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와 맞대결에 전력을 소모하기보다 전세계 네티즌들을 상대로 인터넷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아웃소싱을 통해 아래아한글 이외에도 국내외 벤처업체들로부터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확보, 다양한 제품군을 구비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다.
얼마전 경비행기를 타고 4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선 교포청년 이주학씨를 내세운 드라마틱한 프로모션 또한 대표상품인 아래아한글로 글로벌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한컴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씨는 10월 30일까지 17개 기착지에서 「우리말 우리글을 잊지말자」는 간곡한 당부와 함께 한인단체 대표들에게 아래아한글을 증정하는 한편 항공일지도 아래아한글로 쓰기로 했다.
한컴측은 인터넷 가상공간에 한민족 문화권을 한데 묶는 커뮤니티를 구축해 꾸준히 마케팅을 계속할 경우 아래아한글이 최소한 미주지역에서 1백만장, 유럽 및 기타지역에서 1백만장 등 총 3백만장 정도는 팔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국제판이 포함된 아래아한글 8·15특별판은 우리말뿐 아니라 중국·대만·일본어를 지원하는 다국어 워드프로세서이기 때문에 2개 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교포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또한 자국어 워드프로세서 개발능력이 없는 아시아와 유럽의 몇개국 사용자들도 MS사의 독점적인 시장장악에 맞설 대안으로 호환성이 뛰어나고 가격경쟁력 있는 아래아한글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MS워드의 유니코드에 포함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제3국과 국가표준 워드프로세서 공급계약을 추진중이며 한글날 이전에 계약을 성사시킬 전망이다.
평소 「기술은 기본기이고 전략은 마케팅에서 나온다」는 지론을 펴온 전하진 사장이 앞으로 얼마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할 수 있을지, 또 한국의 빌 게이츠라는 거추장스러운 꼬리표를 떼버린 이찬진 사장이 아래아한글 후속버전을 포함해 글로벌 틈새전략에 걸맞은 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