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앞에서 과학자들의 소신은 얼마나 굳센 것일까? 이 주제와 관련해서 서양에서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내려온다.
영국의 찰스 2세 국왕이 하루는 왕립학회 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냈다.
『먼저 대야 하나에 물을 담고 무게를 잰다. 그 다음에 산 물고기 한 마리를 집어넣고 다시 무게를 재면 물고기를 넣기 전과 변함이 없다.그런데 만일 죽은 물고기를 넣으면 대야 전체의 무게가 늘어난다. 이것은 어떤 까닭인가?』
찰스 2세는 원래 항해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목재 중에서 어떤 것이 물에 잘 뜨는지, 또 배는 어떤 모양을 해야 물의 저항을 덜 받는지 등에 대해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앞에서 소개한 질문도 평소 그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왕립학회의 과학자들은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문제와 관련된 몇가지 사실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즉, 옛날에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으로 밝혀냈듯이 물질마다 비중이 다르다는 것, 또 물 속에 들어간 물체는 부력에 의해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사실 등.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서 자신있게 답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낸 질문에 대답을 안 하는 것도 큰 결례지만 정확한 답을 내야 하기 때문에 왕립학회의 체면이 걸려 있었던 것이다.
관련된 문헌을 뒤지는 등의 조사와 토론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가를 밝히기 전에, 먼저 그 일이 참으로 일어나는가를 먼저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대담(?)한 제의는 동료들에 의해 묵살되었다. 감히 왕의 말을 의심하다니! 신하나 동료 학자들은 왕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반역을 뜻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것이다.
심지어 왕이 낸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즉, 『죽은 물고기는 무게가 나가지만 물 속에 떠서 계속 움직이는 산 물고기는 무게가 안 나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시 토론이 이어졌고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누군가가 다시 제안을 했다. 직접 실험부터 해보자는 것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실험과정을 지켜보았다. 먼저 대야 물 속에 산 물고기를 집어넣자 무게가 증가했다. 다음으로 죽은 물고기를 넣었다. 산 물고기 때와 마찬가지로 무게가 늘어났다. 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왕이 장난을 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사실 정사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한때 배타적이기도 했던 왕립학회에 누군가 앙심을 품은 사람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왕립학회와 관련된 또 다른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느 날 포츠머스라는 항구에서 편지가 한 통 날아왔다.
당시에 나온 신간 서적 가운데 하나는 목공용 접착제로 쓰이는 타르가 혈액 안정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포츠머스의 편지는, 「어느 선원이 발을 삐었다가 타르를 많이 썼더니 사흘만에 멀쩡히 회복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왕립학회 회원들은 서적과 편지를 놓고 진지한 토론에 들어갔다. 한참 논의가 진행중일 때 또 다른 편지가 도착했다. 역시 포츠머스에서 온 것이었다. 「지난번 편지에서 깜박 잊은 것이 있소. 그 선원의 다리는 나무로 만든 의족이었소.」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