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펴들면 온통 구조조정 얘기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불확실한 내일에 제 마음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후 정부는 정부대로 부실하거나 적자가 계속나는 기업이나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판단되는 기업을 퇴출시키느라 바쁘고, 기업도 나름대로 종업원 해고, 부실채권 회수 등 경영의 군살빼기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망용 PC시장은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기업간의 출혈경쟁을 막고 예산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기관에서 사용하는 PC의 경우 업무를 처리하는 데 꼭 필요한 사양만을 정해서 쓰고 있다.
정부가 행망용 PC의 기본규격을 정해 이를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정부의 행정업무 효율화나 예산절감 차원에서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의 행망용 PC 공급시장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최근 정부기관의 PC공급을 둘러싼 업체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업체들이 PC공급권을 따내기 위해 스스로 정부 및 투자기관에 종래와 같은 가격으로 기본사양보다 좋은 고급기종을 공급하거나 또는 이를 제안하고 있다고 한다.
종래 행망용 PC와 비슷한 가격에 고급기종을 납품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덤핑을 벌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기업 입장에서 보면 수요가 큰 정부 및 투자기관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은 손익을 떠나서 안정적인 수요처 확보라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행망용 PC의 규격을 정한 정부의 기본의지를 무시하는 것이며 정부로 하여금 행망용 PC의 가격이 원가보다 높게 책정돼 이익이 나고 있으니 가격을 낮춰도 좋다는 것을 암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내년도 행망용 PC 가격을 책정할 때 올해 구입가보다 더 낮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PC공급업체들이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어떻게 이런 일을 일삼는지 이해가 안된다.
IMF를 빨리 극복하기 위해선 상식이 통해야 한다. 상식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이 그리고 법이 지켜지고 존중되며 부도덕과 불법, 일컬어 반칙이 설 수 없는 사회가 돼야 IMF를 빨리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정부의 역할과 주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 전 한국통신이 2천여대의 행망용 PC 구입을 추진하면서 행망용 규격 이상의 사양을 제시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에서 제외시킨다는 제품선정 기준을 밝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부기관이 모두 한국통신처럼 이러한 방법으로 행망용 PC를 구입한다면 기업간의 불공정경쟁은 반드시 사라질 것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백대씩 한꺼번에 구매가 일어나는 행망 및 교육용 PC시장은 PC업체들에 있어서 「최고의 시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을 독차지하겠다는 욕심에 기업의 경영부실을 부추기고 관련산업과 나라를 병들게 하는 그런 일은 자제해야 한다.
올해 잘못한 것 때문에 내년에 정부가 형편없이 제품가격을 낮춰줄 것을 요구해도 아무런 변명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업체간 제살깎기식 행망용 PC 오버스펙 제안경쟁은 이제 그만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IMF파고를 넘을 수 없다.
〈서비스뱅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