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혼돈의 시대

 돈의 흐름이 민족이나 국가의 통제없이 자유롭게 흘러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세계 각국이 70년대 초반 고정환율제도를 철폐하면서부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속도로 팽창해온 세계 굴지의 대형 금융기관이나 거대기업들은 각 나라의 화폐가 미국의 달러에 의해 교환비율이 하나로 고정된 고정환율제도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국가가 자본의 흐름을 통제함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집단의 불만이었다.

 그 결과 세계 금융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게 됐다. 최근의 한 조사통계치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외환 및 국제유가증권 매출액이 무려 10배나 증가했다. 세계 증권가의 하루 거래액은 1조5천억 달러로 독일의 한해 생산규모이며 전세계가 1년 동안 원유를 사기 위해 지불하는 액수의 4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더욱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보통신망이 지구촌을 하나의 단일 생활권으로 묶으면서 세계적인 핫머니의 이윤사냥은 상상을 불허한다.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 돈이 몰려들고 일순간에 한 나라의 금융산업을 마비시키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국제투기꾼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자신들이 투자할 만한 나라의 화폐가치를 평가하고 화폐의 교환비율인 환율조차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요즘처럼 세상일이 어렵게 돌아가는 시대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퇴출기업이 속출하고 정리해고나 빅딜 등은 회사나 근로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내 금융산업의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기업은 기업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환율불안·내수침체·구조조정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한참 부산해야 할 전자업계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더욱 정확한 통계나 분석에 의해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니 그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