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LG 반도체 합병 "추석 협상" 요약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반도체 단일법인 설립안이 다음달까지 외부 평가기관의 실사를 통해 최종 경영권을 결정하는 것으로 일단 미봉됐다.

 하지만 추석 연휴기간중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쟁점인 경영주체 확정에 사실상 실패함에 따라 단일법인 설립에 대한 순탄한 타결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번 협상안에 대해 타결보다 사실상 결렬쪽으로 평가가 기우는 것은 외부 평가기관에 의한 실사가 현실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즉 양측이 인정한 외부 기관이 다음달 말까지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경영권을 「빼앗긴」 회사가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외부 평가기관을 정하는 일부터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평가기관을 정하더라도 자산·부채·기술력 등 다양한 항목의 평가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를 놓고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양 그룹이 시한으로 정한 다음달 말까지의 물리적인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다.

 협상과정에서 양 그룹이 보여준 고집을 감안할 때 평가기관 선정 작업이나 평가기준 결정에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1개월 반 동안 양사를 실사한 뒤 공정한 평가를 거쳐 경영주체를 선정한다는 합의 자체가 단일법인 설립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이번 합의 결과를 평가했다.

 이 때문에 재계 관계자들은 스스로 정한 마감 시한 이전에 양측이 단일법인 설립안을 백지화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반도체 부문의 빅딜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양사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이번 빅딜의 대상인 현대전자와 LG반도체측 관계자들은 협상이 결렬 분위기로 가고 있는 데 대해 오히려 안도하면서 앞으로 남은 한달여 동안 정부측이 반도체 빅딜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반도체 부문 빅딜 논의 자체가 반도체 업종의 특성을 무시한 채 단순한 정치논리에 따라 양사의 합병을 종용해온 정부 정책의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하지만 결국 양측이 어떤 방식으로든 합병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여전히 설득력을 잃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반도체 빅딜과 관련해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계속 강도 높은 발언을 계속해 온 점이나 이번 협상발표에 대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모한 정치적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버티기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각각 9백35%와 6백17%에 이르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입장에서 결렬 이후 여신중단 등 금융권을 통한 압박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제3의 평가기관 실사를 통해 11월 말까지 경영주체를 결정한다는 이번 합의는 단순히 시간을 번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전히 공은 재계쪽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