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 끝에 선 멀티 주변기기 산업 (하)

대책과 방향

 위기의 국내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이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해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장해줌으로써 벤처기업의 자금유입 물꼬를 스스로 터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벤처기업 제도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 투자 주체가 미래기술에 대한 투자와 이윤창출을 확신하는 전문기업 투자회사나 일반 투자자들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크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벤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주정부의 역할은 사실상 없고 우리나라 정부처럼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자금조성 규모와 명분 차원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정부당국보다는 정보산업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회 각층의 관심과 자발적인 투자가 잇따르고 있어 IT산업이 첨단산업으로 고속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미래산업이라 일컫는 IT산업에 투자해도 부동산 등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와 같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역할은 기업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로 기업과 투자자들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지 않고는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토양을 만든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사회저변 차원에서도 벤처기업에 더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최근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벤처타운을 건립, 사무실과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소 반가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것은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기본요소일 뿐 실질적인 지원책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우수기술을 확보한 제조사에 자금을 제공해주는 각종 제도와 자금이 액면 그대로 벤처기업에 제공된다고 믿는 기업은 없는 실정이다. 가산전자와 두인전자 등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제조업체들의 대부분도 기술 관련 각종 자금을 지원받기는 했으나 미래투자에 대한 반대급부, 즉 「담보」 제도의 덫에 걸려 운신의 폭을 넓히는 데 적잖은 제약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금지원을 추진하다고 하더라도 자금 집행은 금융권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 하나만을 보고 자금을 제공해주는 기술투자 기반이 척박해질 수 없다.

 또 담보·어음·재무제표 등 중소 벤처기업의 발목을 걸어잡는 한국 특유의 금융관행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지식기술 기반의 기업가치를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미래의 정보산업 기술전쟁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중소 벤처기업을 비롯한 IT 업계가 가시적인 정책보다는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미래 지식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이나 부동산 등 실질자산에만 자본이 집중되기보다는 지적가치를 바르게 판단하고 참여할 수 있는 투자기관이나 금융제도 확립이 필요하다.

<이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