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노벨 물리.화학상

 컴퓨터가 물리·화학 등 순수과학 연구분야에도 핵심적인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스웨덴 한림원이 13일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월터 콘 교수(75)와 노스웨스턴대 존 포플 교수(73)를 선정한 데서도 잘 읽을 수 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 업적은 한마디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분자의 구조와 성질을 규명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화학실험에서는 새로운 물질의 성질을 알아내려면 일일이 실험을 해봐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수상자들이 개척한 「계산 화학」에서는 이런 번거로운 실험과정 없이 컴퓨터 프로그램만을 돌림으로써 실험을 한 것과 거의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의약품 개발은 물론 지구상공의 오존층 파괴 때 일어나는 변화까지도 컴퓨터 화학을 통해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도저히 직접 실험이 불가능한 우주 공간에 있는 물질들의 구성까지도 컴퓨터 화학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특히 공동 수상자인 존 포플 교수는 컴퓨터 화학의 상징으로 불리는 「가우시안(Gaussian)」이라는 프로그램을 개발, 그 동안 양자화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60년대에 처음 소개된 이 프로그램은 80년대 중반부터 상업용 제품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국내에서도 양자화학 연구자들이 적지 않게 이 프로그램을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또 월터 콘 교수도 밀도 범함수라는 양자화학의 새 이론을 제시, 컴퓨터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 이 개념은 60년대에 처음 제안된 것으로 일종의 계산기술로 이해하면 된다.

 밀도 범함수는 그동안 양자 물리학에서 주로 사용되다가 최근 화학분야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과 이윤섭 교수는 『수상자들은 양자 화학에 컴퓨터를 도입한 태두』라며 『전래의 화학은 이들이 개척한 새로운 분야와 결합해 진일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 스탠퍼드대 로버트 래플린 교수(48)와 프린스턴대 대니얼 추이 교수(59), 컬럼비아대 슈퇴어머 교수(49)는 새로운 형태의 양자 유체를 발견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분석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새로 발견된 양자 유체는 쉽게 말해 전자 덩어리들이 마치 유체처럼 몰려다니는 현상을 새롭게 규명한 것이다. 이런 양자 유체의 움직임은 반도체에서도 흔히 나타나지만 이번 발견은 좀더 극한 상황(극저온·아주 센 자기장)에서 이를 포착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 80년 독일의 물리학자 클리칭이 발견한 것과의 차이는 양자 유체의 전기흐름이 좀더 불규칙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규명한 것. 이로써 물리학자들은 앞으로 물질의 내부구조나 역학을 이해하는 새 틀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서울대 물리학과 유인석 교수는 『연구 자체는 학술성이 매우 높은 것이지만 장차 반도체의 성능향상 연구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자 유체의 특징을 활용하면 아주 정밀한 전기저항의 측정이나 자기장의 측정표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