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상가 "DIY 빅쇼"

 부천에 사는 구성회씨(41)는 최근 색다른 방법으로 PC 한 대를 샀다. 용산의 컴퓨터업체 S사 직원이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 DIY」를 신청한 것. 가격을 비교해 보니 대기업이나 컴퓨터 양판점보다 저렴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PC를 조립해 볼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DIY를 하던 날, 혜진(중2)과 혜정(중1)은 한동안 주변기기와 부품을 방 안 가득 늘어놓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하지만 S사 직원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하자 중요한 부분을 노트에 적어가며 열심히 따라했다. CPU와 메모리를 꼽고 나사를 돌리는 동작이 어설펐지만 그래도 재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3시간 반에 걸친 DIY가 끝나자 아이들은 번들로 공급된 영어학습 타이틀과 게임을 하며 뿌듯해했다.

 『뭐 PC조립 한 번 해 봤다고 애들 실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졌을 리 있나요. 하지만 컴퓨터라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준 것 같아요. 초보 수준을 뛰어넘기에 아무래도 도움이 되겠죠.』

 방문DIY에 대한 구성회씨의 소감이다.

 용산상가가 DIY(Do It Yourself)로 비상구를 찾고 있다.

 서울의 전자유통 1번지인 용산은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그레이마켓(Gray Market). 구불구불 이어진 미로를 따라 다리품을 팔면 덤핑이나 비품으로 흘러다니는 보드들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한때는 「조립 PC의 천국」이라는 별명에 어울릴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올 들어 조립 PC 판매율은 예년의 3분의 1 수준을 밑돌고 있다는 게 용산 상인들의 푸념이다.

 PC통신과 인터넷 동호회 게시판에 딜러가격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판매마진도 눈에 띄게 줄었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회오리는 용산 상인들을 막다른 궁지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제 소비자들도 불법복제 OS와 리마킹 CPU, 그리고 덤핑으로 흘러든 주변기기들을 꺼리고 있다.

 이처럼 설 땅을 잃게 된 용산상가가 대안으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PC DIY다. CPU, 메모리, 모니터, 케이스, 주기판, 하드디스크, 모뎀, 마우스, VGA카드, 사운드카드, OS 등을 고객이 매장에서 직접 골라 조립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같은 DIY는 나만의 맞춤 PC를 직접 만들어 보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있다. 주변기기와 부품들이 정품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될 뿐 아니라, 초보자들의 경우 작동원리와 간단한 수리법 등을 익혀 PC 고장이나 업그레이드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게 DIY의 매력.

 덕분에 용산에서는 다양한 DIY 풍속도가 연출되고 있다. 「OS를 뺀 하드웨어만의 DIY」 「원하는 사양을 정확히 맞춰주는 맞춤형 DIY」 「토요일에만 열리는 주말 DIY」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DIY」 등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서비스 경쟁 또한 치열하다. 상담을 통해 견적부터 먼저 뽑아주는 DIY 비포 서비스(Befor Service)가 등장했는가 하면 동급기준으로 더 싼 제품이 있을 때는 1백10%를 돌려주는 환불보상제를 내거는 곳도 생겨났다.

 요즘 들어 가장 주목받는 방식은 올 하반기부터 세일컴퓨터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방문 DIY. 이 회사는 조립PC업체에서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벤처업체로 거듭난다는 전략까지 세워놓고 있다. 초보자용 PC서적을 써 화제가 됐던 탤런트와 외국 출신의 컨설팅업체 사장이 회사지분을 5∼10% 받는다는 조건 아래 광고모델로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터미널 상가에 위치한 주노컴퓨터처럼 소비자가 매장에 찾아오면 언제든지 PC 조립을 해볼 수 있는 DIY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DIY 매장은 미리 완성해 놓은 조립PC 판매와 DIY판매를 병행하는 곳이 대부분. 대기업의 브랜드PC만 취급해 오던 양판점들 중에도 수익이 줄어들면서 자체 브랜드의 DIY PC를 판매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주말 DIY의 경우 주로 전자랜드 등 소비자판매 비중이 높은 상가 상우회들이 이벤트 형식으로 실시하고 있다. 상우회가 AS를 보증하고 상가내 조립PC업체들이 공동으로 DIY행사를 여는 것.

 DIY를 위한 홍보전략도 다양해지고 있다. 피씨디렉트의 경우 강습을 한 후 제품을 입찰판매하는 이벤트를 열어 호응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PC리더는 서울 시내 각 대학의 축제에 DIY행사를 마련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웹 DIY도 생겨나고 있다. 가상쇼핑몰에 PC DIY 코너를 개설하고 사용자들이 주문한 맞춤형 PC를 일반 컴퓨터 유통점보다 약 20% 정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이같은 DIY 붐을 『생존의 위협을 느낀 용산상가의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하면서 『앞으로 가격파괴 경쟁이 시작될 경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DIY업체들 중 차별화된 서비스로 소비자를 공략하는 곳만이 수익을 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