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긴급점검 반도체 빅딜 불가피한 선택인가 (5)

관련업종(장비 및 재료산업) 지폐화

 최근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반도체 사업 합병 추진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그동안 사업적으로 이들 소자업체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국내 중소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업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장비 및 재료 업체 관계자들은 『IMF 한파로 가뜩이나 불황을 겪고 있는 와중에 LG와 현대의 반도체 사업 합병이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까지 겹치면서 최근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시장은 불황의 수준을 넘어 그동안 쌓아온 관련산업의 전체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반도체산업협회가 상반기 실적을 바탕으로 추정한 올해 국내 반도체 장비 생산액은 2억7천만달러 정도로 지난해의 7억9천만달러보다 무려 64%가 줄어들고 장비의 자급 비중도 21%선에서 14%대로 크게 하락할 전망이다.

 반도체 재료 시장 또한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전년 대비 17% 정도 감소한 19억2천만달러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현대와 LG가 현재의 추진방식대로 반도체 사업 부문을 합병할 경우 국내 장비 및 재료 산업의 초토화는 시간문제라는 게 관련 중소업체의 우려다.

 두 회사가 합병에 따른 구체사항에 합의하고 곧바로 실제적인 통합작업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반도체 분야의 기술 특성상 일정기간 이상은 신규 설비투자나 장비발주가 거의 없을 것이 확실하다. 또 두 회사가 합병되면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시장은 지금보다 규모 자체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장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내년부터 국내 중소 장비 및 재료 업체의 잇따른 도산과 함께 외국 업체의 국내 공장 철폐 및 시장 철수도 불가피할 전망이며 이는 곧바로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산업의 기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최근 상장사협의회 및 한국증권업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업체들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75%에서 최소 20% 수준까지 급감했으며 반도체 사업 합병 소식과 함께 외국 유수 장비업체들의 시장 철수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반도체 주변 산업의 기반 붕괴는 장비 및 재료 기술이 향후 국내 반도체 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 분야이자 유망 수출 품목이라는 점에서도 예상치 못한 경제적 손실과 기술적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가장 큰 우려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황무지나 다름 없던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산업이 오늘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 발전한 데에는 반도체 소자업체들의 힘이 컸는데 이제 LG와 현대의 합병으로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국산화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던 국내 장비 및 재료 시장이 현재 30%대를 기록하게 된 데는 국내 소자업체가 지닌 세계적인 수준의 공정기술 노하우와 반도체 3사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내수 기반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만약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전체적인 틀이 깨진다면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악순환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국내 중소 장비 및 재료 업체들은 『반도체 사업의 합병 추진에 앞서 국내 반도체 산업이 단순한 칩 제조의 수준을 넘어 또 하나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육성 가능한 제조 장비와 재료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주상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