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패키징 외주 시장에서 25%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아남반도체(대표 황인길)가 결국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그룹들의 공통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계열사 상호지급보증」 때문이다.
단일업체로는 세계적으로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이 부실 계열사에 대한 빚보증에 발목이 붙잡힌 것이다.
아남그룹의 주력계열사인 아남반도체는 IMF로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기 시작한 올초부터 자체적인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추진해 왔다.
또한 연초 필리핀 반도체 공장을 관계사인 미국 암코사에 매각했고 최근에는 미 살로먼 스미스바니 증권사 등과 일부 시설을 매각하는 형식으로 6억달러 정도의 외자유치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협상의 마지막 순간에 외국 투자가들이 계열사의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단기성 자금의 중장기 전환을 투자조건으로 내걸면서 유일한 방안이었던 외자도입이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다.
아남 측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워크아웃이 오히려 구조조정의 강도와 일정을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동안 아남그룹이 현재의 방만한 기업구조를 「반도체업종 중심의 전문그룹」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공언해 왔기 때문이다.
상호지급보증이라는 얽힌 실타래를 독자적으로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역으로 워크아웃이라는 강제적인 환경을 동원하는 극약처방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아남 측은 워크아웃 신청과 함께 3단계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우선 1단계로 4개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 중 하나를 해외에 매각, 차입급 일부를 상환해 재무구조를 건전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어 2단계로 5천만 달러의 유상증자를 통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아남반도체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매각을 추진한다는 것. 마지막 3단계는 현재 14개인 계열사를 반도체 중심의 5, 6개사로 줄일 예정이다.
이같은 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면 아남그룹은 주력기업인 아남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설계업체인 아남에스엔티, 반도체 장비업체인 아남인스트루먼트, 반도체 재료업체로 포토마스크 전문업체인 PK, 반도체 유관업체인 아남환경 등 반도체 전문그룹으로 거듭나게 될 전망이다.
본래 취지와는 달리 워크아웃=퇴출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이번 아남그룹의 워크아웃이 성공사례로 이어질지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