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골프> "비즈니스의 티오프는 필드에서 시작된다"

직원 21명의 중소기업 사장 K씨(43)의 골프 구력은 7년. 친구 권유로 시작한 처음 4년은 순수한 재미로 쳤고 후반 3년은 이른바 비즈니스용 골프를 쳤다.

 그 7년 동안 K씨는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 골프란 치면 칠수록 정직하다는 점이고 비즈니스는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4년 동안 K씨는 70타대의 싱글핸디캐퍼 수준까지 올랐다. 자칭 골프광인 그의 스윙폼은 주위에서 「뷰티풀」을 연발할 만큼 멋졌다.

 하지만 비즈니스 골프를 치게 된 후반 3년은 평균 90타 중반, 어떤 때는 1백타를 넘는 일도 생겼다. 상상해 보라. 단 1타라도 줄여보려는 골퍼들에게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런데 K씨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물론 IMF탓도 있지만, 기업경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K씨는 요즘 자신의 골프를 되새겨보고 있는 중이다.

 이와는 반대로 직원 17명의 미국계 현지법인 대표인 L씨(42).

 구력 4년인 그는 처음부터 아예 비즈니스용 골프에 입문했다. 연습장에 등록한 다음 티칭프로를 구워삶아 벼락레슨을 받고는 1주일 만에 라운딩에 나섰다. 그리고는 연습장은 끝이었고 필드에만 한달 평균 5∼6회씩 나가기 시작했다.

 L씨는 오로지 비즈니스를 위해 골프를 쳤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으면 필드로 고객을 초청했다. 나중에는 대화가 잘 풀리는 고객에 대해서도 후일을 대비해 필드로 끌어냈다.

 만 2년이 가까워오면서 스코어가 90타대 초반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L씨는 자신의 폼이 그토록 엉성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날 L씨는 우연히 초등학생 아들이 촬영한 캠코더에서 자신의 스윙폼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그날로 연습장을 다시 찾은 L씨는 현재까지도 2년여가 넘게 1주일에 1∼2회씩은 꼭 연습장에 나가 지도를 받고 있다.  

 이제는 팔로스로 때 제법 왼팔이 쭉 펴지면서 피니시 때는 오른쪽 어깨위의 두 손바닥이 접시를 받쳐든 웨이터의 그것처럼 자연스럽게 겹쳐 뉘어진다. 재교정을 받고 10개월째부터 스코어도 80타대 초반을 넘나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친 김에 싱글까지 바라볼 작정이다. 물론 비즈니스는 더욱 잘 된다. L씨 역시 골프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경우다.

 K씨와 L씨의 차이는 무엇일까. 마스터스 대회만 통산 6번을 제패했던 골프황제 「황금곰」 잭 니클라우스는 이런 말을 했다. 『스코어란 경기할 때 골퍼가 마음을 비우는 정도에 비례한다. 그것이 골프다.』 골퍼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심적 요인이 라운딩의 흐름을 좌우한다는 골프의 특성을 잘 표현해준 대목이다. 골프가 멘탈 게임(Mental Game)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비즈니스 골프를 시작했을 때 K씨는 적어도 골프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만만했다.

 누군가 처음 비즈니스 골프의 비법(?)을 귀띔해준 것이 그의 골프와 비즈니스가 벼랑으로 치닫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상대 동반자의 스코어 수준으로 쳐라. 가령, 상대방이 슬라이스 OB를 내면 당신도 같은 방향으로 슬라이스를 내라. 하지만 당신은 절대 OB를 내면 안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사라진 공을 찾을 때 당신이 함께 찾아줘야 하지만 상대방이 당신을 돕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K씨는 이 비법을 철저히 따랐다.

 페어웨이에서 상대방이 토핑이나 생크를 내면 자신도 적당히 쳐서 비거리를 맞추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골프에서 의도적으로 슬라이스를 내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겠는가. K씨는 결국 슬라이스를 위해 직선타구 OB를 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처음 몇홀을 돌다보면 기분이 영 꺼림칙해져 매번 게임을 놓치곤 했다. 상대방은 상대방대로 호스트가 자주 실수를 하니 유쾌한 골프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L씨는 어떠했는가. 아무리 비즈니스 골프였지만 왕초보였던 L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경기 진행에 급급하다보니 상대방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한수 훈수를 받는 입장이었다. 1년여가 지나자, 슬그머니 스코어 향상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동반자가 비즈니스 상대가 아닌 골프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필드에서의 대화가 비즈니스 얘기에서 점점 골프 테크닉이나 관련 토픽들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랬더니 스코어가 부쩍부쩍 향상되기 시작했다.

 원래 화통한 성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L씨와 한번이라도 라운딩을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 대해 나쁘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됐다.

 K씨는 골프도 안되고 비즈니스도 안되는 최악의 경우이다. 반대로 L씨는 골프도 만끽하고 비즈니스도 성공한 케이스다. K씨와 L씨의 경우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골프는 정직한 것이고 비즈니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골프와 비즈니스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유지되고 있는 것을 정말로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 골프는 비즈니스로부터 노력을 배우고 비즈니스는 골프로부터 정직을 배우는 것이다. 자! 이제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산홍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필드, 하나둘 노란 은행잎이 날리는 카트 길, 벤트그래스 잔디가 마지막 요염한 푸르름을 이어가는 곳. 이 깊은 가을에 골프와 비즈니스의 진정한 만남을 가져보지 않겠는가. 

<기획특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