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만도기계 윤종은 상무

 우리나라에서는 과학기술의 비중을 이중 잣대로 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몇년 동안 불황극복을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막상 IMF가 닥치자 제일 먼저 구조조정을 단행한 곳이 바로 연구소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 회사들이 연구소를 연구비나 축내는 부서로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연구소장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만도기계 윤종은 상무(49)가 바로 그 주인공.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위니아연구소는 최근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김치냉장고 「딤채」를 개발한 곳. 회사측이 예상하는 올해 판매대수는 지난해 7만대보다 1백% 이상 증가한 15만대로 매출액 기준으로는 약 8백억원에 달한다.

 만도기계가 지난해말 부도로 자금사정이 좋지 못한 지금 이 정도 수입은, 그것도 대부분 현금 매출임을 감안하면 회사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달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로부터 「장영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최근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이달의 과학기술자상」(12월)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상복도 겹쳤다.

 그래서 충남 아산에 있는 만도기계 위니아연구소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선 사무실 곳곳에서 느껴지는 활기에 『이곳이 정말 부도난 회사의 연구소가 맞느냐』며 반문하기 일쑤다.

 이에 대해 윤 상무도 『지난해말 회사가 부도를 낸 후 모든 부문에서 비용절감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딤채를 비롯한 냉방제품과 관련된 기술개발만은 회사를 재건하는 데 꼭 필요한 투자로 인정받아 최고 경영진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고마워하고 있다.

 그는 지난 77년 만도기계의 전신인 현대양행에 입사한 후 20여년 동안 연구개발부서만 맴돌았다.

 이처럼 연구개발로 점철된 그의 직장생활에서도 몇 안되는 히트제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딤채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조립라인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자는 제안에서 비롯됐다.

 윤 상무는 『8월이면 일감이 떨어지는 에어컨 조립라인을 연중 가동할 수 있는 대체제품을 연구한 끝에 김치냉장고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최근 우리의 주거형태가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 다세대 주택 등으로 전환됨에 따라 땅속에 독을 묻어 김치를 보관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또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김치를 먹는 가구가 1천만에 달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시장규모는 충분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딤채는 김치의 숙성 및 발효정도에 따라 최적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설정,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냉장고가 냉장실 온도를 일정한 수준(5∼7도, 냉동실 -20도)으로 유지하는 기능만 제공하는 것과는 접근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윤 상무는 이를 위해 『지난 93년부터 약 3년 동안 김치의 숙성 및 발효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수행한 끝에 딤채에서 배추·무·갓·물김치의 숙성은 물론 「잘 익은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온도 조건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딤채는 다른 냉장고에 비해 가격이 3∼4배에 달할 정도(대형 94ℓ기준 소비자가 82만원)로 비싼 제품이다. 그러나 만도기계는 현재 주문이 쇄도, 공장을 1백% 가동해도 주문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현재 밀려있는 주문량만 8천여대에 달한다는 것이다.

 딤채의 성공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불황기일수록 기술개발에 승부를 걸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