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일컬어지는 고선명(HD)TV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이 기선을 제압할 공산은 매우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직까지 LG전자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쓸 만한 HDTV칩세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소니·필립스·톰슨 등이 아직까지 HDTV를 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칩세트 기술부족으로 HDTV의 상품화에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의 송동일 이사와 LG전자의 김근배 이사는 자신있게 HDTV를 내놓을 수 있는 곳은 아직까지 국내 2개사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선제압만이 전부는 아니다. 국내 업체들이 세계 일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HDTV가 당장 세계 TV시장과 산업에 큰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HDTV가 세계 TV시장과 산업 판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적어도 5년 내지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이것은 국내 업체들에 의해 기선을 제압당한 세계 톱 브랜드업체들이 HDTV에서도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초반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주어진 기간 안에 브랜드 인지도를 확실히 끌어올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송 이사는 강조하고 있다.
김 이사도 『일류브랜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로부터 확실한 신뢰를 획득하는 방법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HD
TV를 가장 잘 만드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회사」라는 인식에 흠이 가지 않도록 모든 제품의 품질을 소비자들의 기대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기단계를 지나 대중화단계에 접어들면 시장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 국민의 3분의 2가 시청자라는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 시장공략이 필수다.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의 마쓰시타·미쓰비시 등은 이미 디지털TV 수신기만 연결하면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과 디지털방송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TV를 개발하는 등 발빠르게 수성작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은 아직까지 국내업체들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는 미개척지여서 이 시장을 어떻게 파고 드느냐가 숙제로 남아 있다.
국내업체들은 또 디지털AV 제품군에서 일본에 비해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니디스크·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디지털VCR·디지털캠코더·디지털스틸카메라 등 디지털 AV제품은 일본업체들이 이미 세계시장 지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데 반해 국내업계는 초기 상품화단계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정보가전시대에는 디지털TV 하나만의 우위로 일류브랜드 명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인 만큼 취약 제품군과 기술에 대한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분야는 아직 프로그램이나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 및 서비스사업도 디지털제품의 시장지배력에 유무형의 힘을 발휘할 전망이어서 이 분야와의 연계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업체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시장에서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까지 영화제작이나 방송서비스에 뛰어드는 등 전방위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업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들은 프로그램 제작이나 각종 데이터 및 영상서비스사업에 관한 한 아직도 초보단계에 그치고 있으며 그나마 IMF사태를 맞아 손을 떼고 있는 형편이다.
국내 업체들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모처럼만의 호기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관계자들의 지적에 이제부터라도 경영진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