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34);의사 "파레"의 업적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마취기술이 발달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술이나 아편 같은 것을 사용했지만 효과가 불충분해서 외과수술 도중에 환자가 쇼크로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다.

 예를 들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 두어 명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환자의 어깨와 다리 등을 단단히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수술할 다리는 수술대에 붙들어 매놓고 의사는 톱을 들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수술」을 마치는 것이다.

 그 다음 절단한 부위의 혈관을 막고 출혈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시뻘겋게 달군 인두로 지졌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한 병사들의 경우는 더 참혹했다. 병사들이 총상을 입으면 상처를 치료하기에 앞서 그 부위에 끓는 기름을 흘려 넣었다.

 탄환의 화약이 유독 성분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 기름막으로 상처부위를 덮으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위생병이나 군의관이 따로 없었고, 그저 일부 의사들이 전장에 가서 보수를 받고 개별적으로 부상병을 치료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16세기 프랑스의 신참 의사 파레는 전쟁터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몇몇 부상병들이 마구간에 모여 있다가 파레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 중에 몇명은 가망이 없었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파레의 말을 듣자 한 나이 많은 병사가 침착하게 그들을 모두 죽여버렸던 것이다.

 파레는 놀라서 그 노병을 책망했지만 노병은 오히려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나도 저런 상태였다면 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을 것이오.』

 그 전장에서 파레는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러나 워낙 부상자가 많아서 준비해온 끓는 기름이 모두 동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달걀 노른자나 식물성 기름 등을 섞어 즉석에서 혼합물을 만든 뒤 끓이지 않고 그대로 상처에 발랐다.

 그날 밤 파레는 자신의 처방이 혹시 부작용이라도 일으킬까 걱정이 되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하지만 이튿날 다시 보니 뜻밖에 자신의 환자들은 상처가 부어오르거나 곪지도 않았으며 통증도 적어서 잠을 잔 사람까지 있었다. 반면에 끓인 기름 처방을 받았던 환자들은 상처도 붓고 극심한 고통과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파레는 일종의 고약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뒤 파레가 개발한 고약 성분은 지금 보면 기묘할 정도다. 강아지를 삶은 기름, 백합 기름, 알코올, 지렁이 등이 주성분이었다. 한편 파레는 절단 부위의 출혈을 막는 획기적인 방법도 고안해냈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대신 그저 혈관을 꼭 묶어버리는 편이 고통도 훨씬 덜하고 출혈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파레가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리게 되자 프랑스 국왕 샤를 9세의 초빙을 받아 치료를 맡았고 결과가 매우 좋아서 마침내 왕실 외과의사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국왕은 아직 어린 나이여서 섭정을 하던 모후 카트린이 결정한 일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구교도인 가톨릭과 신교도인 프로테스탄트(위그노라고 불렀다)간에 살벌한 종교전쟁이 계속되었다.

 1572년 8월 24일에는 역사상 악명 높은 성 바르돌로뮤의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아침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모든 위그노들이 왕실 병사들에 의해 무차별 학살을 당했던 것이다.

 파레도 신교도였지만, 왕실은 그가 앞으로도 인류에 계속 이바지할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왕실이 기대한 대로 파레는 그 뒤로도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