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디지털시스템의 전자파 장애

김정호

◇84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86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석사

◇93년 미국 미시간대 전자공학 박사

◇94년 피코메트릭스 연구원

◇95년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96년∼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I ST) 전기·전자공학과 조교수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노트북PC·핸드폰 등 각종 전자기기의 사용을 억제해 달라는 기내방송을 듣게 된다. 또 전자파 노출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전자파 차단 섬유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가끔 접하게 된다.

 이처럼 전자파 장해 문제는 우리 일상생활에 아주 가깝게 자리잡고 있다. 특히 무선 시스템과 단말기 이용이 급증, 전파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되면서 자연계가 우리에게 선사한 전파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전자파 잡음의 억제가 필수 불가결한 요구조건이 되고 있다. 전파의 효율적 이용 목적뿐만 아니라 인체의 보호와 자연보호 측면에서도 불필요한 전자파 발생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또한 의료장비를 비롯한 전기적으로 민감한 동작 조건을 갖는 전자기기의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도 전자파 발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전자파 장해에 관한 관련 억제기술을 전자기 간섭(EMI : ElectroMagnetic Interference) 또는 전자기 적합성(EMC : ElectroMagnetic Compatibility)이라고 한다. EMI는 장비로부터 발생하는 전자파 장해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EMC는 장비가 외부의 전자파 장애로부터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전자파 장해는 국제적으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개 CISPR(Committee International Special des Perturbations Radioelectrigues)의 권고를 중심으로 규제를 실시한다. 대표적인 규제기구에는 미국 FCC(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독일 VDE(Verband Deutscher Elecktrotechniker), 일본 VCCI(Voluntary Control Equipment and Electronic Office Machine) 등이 있다. 이러한 규격에는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방사성 전자파 장해와 도전성 전자파 장해에 대한 규제값이 정해져 있다. 디지털 전자제품을 시장에 판매하거나 수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규격을 통과해야 하나 그 작업이 경우에 따라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전자파 잡음은 자연현상에 의해 발생하는 자연잡음과 인간에 의해 발생되는 인공잡음으로 나눌 수 있다. 태양이나 별똥별의 활동에 의해 인공위성 통신이 방해받는 경우 자연 발생 전자파 잡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태양에서 발생하는 코로나에서 방사되는 열전자가 대기권에 들어와 이온과 충돌해 방사되는 자연잡음도 있다. 또 구름간 또는 대지 방전에 의해 발생되고 전리층의 영향을 받아 먼 곳까지 전달되는 자연잡음도 있다. 반면 인공 전자파 잡음은 무선통신시스템·제어시스템·전력시스템·고주파기기·조명기기 등에서 발생한다. 최근 컴퓨터를 비롯한 디지털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잡음이 가장 심각한 인공잡음의 발생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컴퓨터와 디지털 신호처리 시스템의 전자파 장해 문제가 최근들어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은 디지털 신호의 고속화가 그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고속 디지털 모듈의 클록 주파수가 4백㎒를 넘고 있으며 2000년대에는 1㎓ 이상의 클록 주파수를 갖는 소자와 모듈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고주파 클록을 가진 클록 공급선이나 신호선에는 실제로 클록이나 신호의 천이시에 1㎓ 이상의 고주파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러한 전류가 루프(Loop)를 형성하게 되면 막대한 전자파가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30㎃, 3백㎒ 고주파 전류가 가로·세로 3㎜ 루프에 흐르게 되면 회로로부터 3m 떨어진 지점에서 약 2백㎶/m의 전자파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전자파 발생량은 FCC 클라스B 규격 상한선을 이미 넘게 된다. 이처럼 디지털 시스템의 고속화는 필연적으로 전자파 장해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이와 함께 디지털 소자와 시스템의 집적도가 증가하면서 동시에 스위칭되는 소자 개수를 증가시켜 또 다시 전자파 발생량을 증가시킨다. 신호선의 길이 및 개수 증가 또한 전자파 발생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 디지털 시스템의 외장이 철재 재료에서 플라스틱 재료로 변하고 있어 전자파 차폐효과도 줄어들고 있다. 컴퓨터 및 모니터가 가정과 사무실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모니터는 인체와 가깝게 설치되어 전자파 장해 효과가 크다.

 시스템에서 전자파 잡음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고주파 전압 또는 전류원이 있어야 하고 전자파를 방출시키는 안테나 구조가 있어야 한다. 안테나 구조는 전류 루프를 이루는 경우와 전압 쌍극자를 이루는 경우로 분리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신호의 주파수 성분, 전류 또는 전압의 크기, 안테나 구조물의 크기가 증가하면 그에 따라 전자파 방출량도 늘어난다. 그러므로 전자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호의 주파수 성분을 줄이거나 회로의 루프나 쌍극자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이 외에도 전자파 차폐(Shielding)·케이블링(Cabling)·필터링(Filtering)·밸런싱(Balancing)·접지(Grounding)·전력선 배치(Power Distribution) 방법 등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계 및 제작방법은 설계 초기에 이미 적용돼야 한다. 설계 초기에는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다양한 억제방법들이 존재하지만 제작단계나 테스트단계에서는 크게 제한받는다. 설계를 변경하고 전자파 장해 규격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이고 고비용의 방법밖에 없다. 따라서 설계 초기단계에서 전자파 억제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고속 디지털 시스템에서 전자파 발생원인이 되는 대표적 현상은 케이블 접지 불량, 접지선 및 전력선의 기생회로 요소, 클록 배급선, 신호선 등에서 발생한다. 케이블은 디지털 시스템에서 길이가 가장 긴 구조물로 전자파 발생의 일차적인 원인이 된다. 따라서 케이블의 접지상태가 중요하다. 접지상태는 전계에 의한 신호발생, 자계에 의한 신호발생을 차폐시키거나 억제시킨다.

 다음으로 중요한 고주파 잡음의 발생 원인은 동시 스위칭 잡음(SSN : Simultaneous Switching Noise)이다. 클록의 천이시에 수많은 트랜지스터가 동시에 스위칭됨으로써 많은 전류가 접지선이나 전력선으로 흐르게 된다. 이러한 순간 고주파 전류는 패키지나 모듈에서의 기생효과로 해서 접지선과 전력선의 전압을 요동시킨다. 요동전압은 다른 소자나 모듈의 논리 상태를 흔들거나 민감한 아날로그 회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접지선과 전력선 전압의 불안정 현상은 패키지와 모듈의 리드프레임이나 와이어본딩과 같은 구조물의 기생인덕턴스 때문에 더 심해진다. 접지선과 전력선의 불안정 현상은 또 시스템 전체의 접지선과 전력선의 불안정을 가져오고 시스템 전체에 배치된 접지선과 전력선이 안테나가 되어 큰 전자파 잡음을 발생시킨다.

 그런 만큼 동시 스위칭 잡음에 의한 접지선과 전력선의 요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패키지구조 및 모듈구조가 연구되고 있다. 특히 플립칩 본딩방법은 본딩구조에 의한 기생회로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이다.

 전력선의 요동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필터링 기능을 가진 디커플링 커패시터(Decoupling Capacitor)가 사용된다. 디커플링 커패시터는 전류 소모원에 가장 가깝게 붙일수록 잡음회로의 루프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IC 내부, 패키지 내부 또는 모듈에 설치된다. 이러한 디커플링 커패시터의 역할이 전자파 잡음 억제효과에 잘 나타나 있다. 가장 이상적인 접지선 및 전력선 배치는 각각 한 개의 금속층으로 설계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시스템 및 모듈의 제작비용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클록 주파수 4백㎒ 이상의 모듈, IC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보다 낮은 속도의 시스템에서는 그리드(Grid)형이나 핑거(Finger)형태로 설치한다.

 또 디지털 시스템에서 클록 공급선과 신호선에서도 전자파가 발생한다. 우선 클록 및 신호선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호의 천이시간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신호의 시간 여유에 대한 제한 때문에 어느 한계 이상 늘릴 수 없다. 따라서 시스템·모듈·패키지·IC 내부 회로의 배치를 최적화해 신호선이나 클록 공급선의 길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와 함께 신호선의 전류 루프를 고려해서 루프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또 전송선의 길이와 임피던스의 적절한 선택이 필요하다.

 위에서 열거한 방법에 의한 억제효과가 충분하지 않을 때 전자파 차폐기술이 적용된다. 금속판이나 박막을 이용해 전자파를 반사시키거나 열로 흡수시키는 방법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제품의 부가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폐방법도 완전하지 못하다. 특히 저주파 자장은 금속으로 차폐시키기 어렵다. 또한 디지털 시스템에서 열방출을 위해서 환풍구를 설치해야 하는데 이러한 환풍구는 전자파를 누설시키는 구조가 된다.

 전자파 억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은 없다. 특히 설계 초기단계에서부터 전자파 잡음에 대한 심각한 고려없이 정상적인 일정에 맞춰 제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또한 전자파 발생량이 곧 제품의 경쟁력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시스템의 속도가 점점 더 증가하고 집적도가 증가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난관은 기술자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게 되고 흥분시키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