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바람직한 "통신산업" 구조조정

허진호 아이네트 사장

 정보통신산업 분야는 최근 몇 년간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경쟁체제가 도입돼 왔다. 특히 기간통신산업 분야의 경쟁도입은 상당한 진척을 이루어 현재 몇몇 사업자의 퇴출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태다.

 기간통신산업은 국가의 근간이 되는 분야인 만큼 어떤 분야보다도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 분야의 경쟁은 서비스 분야별로 복수경쟁을 도입하는 체제로 구성돼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라 여겨진다. 현재 구조가 「경쟁도입」에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경쟁도입」보다 국가의 「기반구조(Infrastructure) 확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도입」도 우리가 소홀히 여겨서는 안될 명제다. 그러나 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반구조 확충」에 우선 순위를 두어 소수의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ed)된 사업자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것이 순서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통신사업자의 경쟁도입 추진과정을 보면 이러한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과거 추진해 온 정책들을 통해 부문별 경쟁을 도입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제한된 경쟁체제로 실질적인 완전경쟁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완의 정책을 보는 느낌이다. 또 국내에 꼭 필요한 인프라 확충에도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정부의 경쟁도입 정책을 유선망의 인프라 구축면에서 본다면 기존에 깔려 있던 한국전력이나 송유관공사 및 도로공사의 망 사용률을 약간 높이는 데 그쳤다고 할 수 있다. 또 무선망의 경우 몇몇 분야는 과잉투자 때문에 공급초과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통신사업자의 경쟁을 도입한 미국과 싱가포르의 예는 나라별 특성에 따라 정책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싱가포르텔레컴 외에 제2사업자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유선분야에서의 업종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제2사업자를 도입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싱가포르 내에서의 인프라를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새로 진출한 사업자가 2000년에 서비스를 시작하므로 적어도 경쟁도입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려면 몇 년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현재 국내 인프라 확충과 적정 수준의 경쟁도입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본다.

 미국은 96년에 통신법안을 통과시키고 나서 약 2년이 지났지만 실패했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미국 통신법안은 실질적인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주된 의도였는데 경쟁을 도입하기보다는 여러 개의 거대기업(Mega merger)이 출현함으로써 실제로 경쟁이 더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각 부문의 경쟁에 의해 이미 인프라가 상당수준 확충된 상태이므로 통신법안을 개정, 경쟁을 도입하는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미국의 환경에 맞는 우선 순위라고 여겨진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한국통신 외에 국내 인프라를 갖춘 통신사업자가 없을 뿐더러 기존 데이콤 같은 제2사업자도 대부분의 인프라를 한국통신에 의존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인프라 확충이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가 돼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지금부터라도 사업자간의 퇴출이나 인수·합병을 유도해 수직적으로 통합된 소수의 사업자 체제로 바꿔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한 분야에 다수의 기간통신사업자들이 진출해 기업 자체의 생존에 급급한 구조를 만들기보다는 몇 개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인프라에 대해 투자여력을 가진 소수 사업자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업자의 출연금 부담을 낮추는 대신 인프라 확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거나 이를 조건으로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과 관련해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역할 최소화가 원론적으로 타당할지 모르지만 현재의 통신사업 구조를 유발한 것은 정부인 만큼 큰 흐름의 조정에는 어느 정도 정부가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통신사업자의 수직적 통합이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일부 문제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이익이 많이 남는 분야에서 수익이 없는 분야를 지원하는 사업형태가 계속된다면 분야별로 경쟁력을 갖춘다는 가장 근본적인 취지에 반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IMF사태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는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만큼 수직적 통합을 이룬 소수 사업자들도 앞으로 진출할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력 확보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또 인프라에 대한 투자여력 및 수요자가 요구하는 미래의 수요상황을 보더라도 서비스의 수직적 통합은 필요하다. 이때 사업단위별로 회계를 분리하는 등 공정경쟁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메커니즘은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수직적 통합은 통신서비스 분야에만 국한되고 통신사업자가 단말기 및 장비사업까지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분리 후 각자 경쟁력을 더 갖추게 된 AT&T와 루슨트의 예에서도 알 수 있다.

 IMF체제는 최소 1년에서 5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 터널을 지나 반드시 극복해내야 한다. 그러기에 정보통신사업의 구조조정은 사업자나 국민 모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지금이 적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