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황찬현 부장판사

 대법원의 황찬현 부장판사(45)는 판결서류를 뒤적이는 다른 동료들과 달리 거의 매일 컴퓨터용어와 씨름을 한다. 대법원에서 관리하는 등기서류를 모두 전산화하는 일을 그가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이제 국민들에게 욕 안먹고 살아야죠. 법원업무에서 그동안 국민들의 불만을 가장 많이 샀던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등기업무였어요. 이 불만을 해소하려면 전산화가 가장 시급했습니다.』

 최근 1단계 등기전산화가 마무리돼 서비스를 개시한 것에 대해 『「사랑받는 대법원」으로 거듭나는 한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황 판사는 『민원인이 등기소에 들어와 5분 이내에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한다.

 이 사업은 현재 수작업으로 제공되고 있는 등기관련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는 것. 지난 94년부터 오는 2003년까지 총 4천1백59억원이 투입되는 대사업이다. 최근 대법원은 서울·인천·부천·광주·대구지역 7개 등기소를 대상으로 1차 전산화작업을 마치고 서비스에 들어갔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관할등기소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등기서류를 발급받을 수도 있고 무인발급기를 이용한 등기부 발급도 가능하다.

 이 프로젝트를 총지휘하는 황 판사는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속도문제는 일단 어느 정도 해결했습니다. 대용량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몇 초면 검색해 출력할 수 있지요. 또 회선 등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 등기소의 백업 데이터로 자동 연결됩니다.』

 황 판사가 속도문제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의 정확성 문제. 사소한 입력 잘못이 개인에게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정확도를 보다 높이기 위해 두 사람이 서로 데이터의 오류를 체크한 후 이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이 다시 검토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후 다시 전문가가 검수하는 과정을 거치지요. 하지만 전혀 문제가 발행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만 해도 15%의 오류율을 기록했다고 하니까요.』

 황 판사는 앞으로 서비스 시행 중 문제가 발견되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없는 한 즉시 시정해줄 계획이라고 밝힌다.

 이번 등기전산화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차별화되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공공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웃소싱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 94년 당시만 해도 아주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시스템 개발은 물론 시스템구매·설치·등기부전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은 전담사업자인 LG EDS시스템에서 담당하고 있지요. 당시에 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 반대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국의 사례 등을 검토해본 결과 이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보면 아주 앞서나간 셈이 되었습니다.』

 황 판사는 『대체로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서비스지역을 넓혀나가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컴퓨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6년, 진주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던 시절 재미삼아 애플컴퓨터를 구입해 배우면서부터다.

 지난 93년 법원행정처 전산담당관으로 서울지역 상업등기 전산화를 추진하기도 했던 그가 법정심의관으로 등기전산화의 총지휘를 맡은 것은 올 3월이다.

 『3년 가까운 전산담당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는 황 판사는 『법조인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대했던 산출물이 쏟아져 나올 때의 기쁨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자신만의 보람을 털어놓는다.

<장윤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