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포옹을 한 남녀가 보인다. 앞을 응시하는 남자. 그의 푸른색 셔츠는 단추가 풀어진 채 느슨하게 걸쳐 있다. 남자의 목을 감고 서 있는 여자. 긴 생머리로 반쯤 가렸지만 여자의 옆얼굴에선 허탈함이 묻어난다. 이때 흐르는 카피는 「우린 속도가 너무 빨랐다」.
도대체 무슨 광고일까. 얼핏 보면 향수나 패션 광고 같다. 남녀 모델의 표정연기도 그렇고 「우린 속도가 너무 빨랐다」의 「아이 캐처(Eye Catcher)」는 은유적으로 성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광고는 한국PC통신의 하이텔 전용망 「파워링크 01432」 개통을 알리고 있다. 너무 빨랐다는 건 56Kbps급 전용망의 속도감을 표현한 말.
요즘 PC통신 업체들의 광고가 확 달라졌다. 감각적인 비주얼로 신세대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얼마 전 일간지에 게재된 데이콤의 「천리안 업&다운(UP& DOWN) 대잔치」 광고는 섹시한 모델과 그보다 더 선정적인 카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두 명의 늘씬한 미녀가 보인다. 검은 옷의 여자는 한 손을 등 뒤로 돌려 지퍼를 내리고 있다. 머리를 틀어올려 시원하게 드러난 목선과 반쯤 내려온 지퍼를 따라 그대로 보이는 속살이 유혹적이다. 이때 흐르는 헤드카피는 「너무 내렸나?」. 옆에 서 있는 핑크색 드레스의 여자는 환한 미소가 예쁘다. 느낌표로 끝나는 또 하나의 헤드카피는 「끝내 준다니까」.
도대체 뭘 내리고 뭘 올리는 건지 알아보기 전에 일단 두 슈퍼모델의 자태에 눈이 간다. 보디카피를 다 읽어보면 내리는 것은 천리안 요금, 올리는 것은 고객만족도다.
그런가 하면 삼성SDS의 유니텔은 세련된 스타일의 이미지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사일런트 러브(Silent Love)」와 「아이스 러브(Ice Love)」라는 제목으로 잡지와 포스터에 쓰인 남녀 시리즈물.
여자는 모노톤의 스웨터를 입고 아이스 러브를 연기한다. 애써 감정을 숨긴 듯 차분한 표정이 오히려 매혹적이다. 사일런트 러브를 표현한 남자.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자유분방한 포즈가 눈에 들어온다. 헤드카피는 「널 클릭하면 난 차갑게 얼어붙어」. 보디카피에서조차 유니텔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그냥 로고와 함께 「인터넷 프리! 저스트 클릭!(Internet Free, Just Click)」이라고만 써 있다.
한국PC통신측은 『기획사 MAPS가 제작한 「파워링크 01432」 광고가 전국 어디서나 빠르고 쉽게 하이텔에 접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했다』고 품평했다. 데이콤도 『다소 모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섹시함과 유머가 어우러진 새로운 스타일의 광고를 내보냈는데 성공적이었다』면서 대만족을 표시했다. 너무 선정적이 아니냐는 항의부터 화끈한 광고였다는 칭찬까지 전화가 빗발쳤다는 것.
삼성SDS 역시 자사 광고가 가장 반응이 좋았다며 흐뭇해한다. 『「싸다, 쉽다, 빠르다」처럼 기능성 우위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 느낌과 감각이 있는 젊은이들의 통신이라는 이미지를 잘 나타냈다』는 게 유니텔 담당자들의 주장.
과연 어떤 광고가 가장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는지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광고전쟁을 지켜보는 네티즌들의 눈은 즐겁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