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우주영웅 존 글렌

 지구촌은 최근 미국 텔레비전이 벌이는 「우주영웅 만들기」 쇼를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봐야만 했다.

 칠순이 훨씬 넘은 존 글렌 상원의원(77)이 다른 여섯 명의 승무원과 더불어 우주 왕복선(디스커버리호)을 타고 지난달 29일부터 9일 동안 지구상공을 비행하고 돌아온 것을 화제기사로 포장해 거의 매일 방송했고 이는 다시 통신위성 등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생중계됐다.

 그가 우주선에서 맡은 공식직책은 화물담당 승무원이었지만, 사실은 우주공간에서 노인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실험에서 「인간 모르모트」 역할도 동시에 수행했다. 이번 여정은 지난 62년 펼쳤던 첫 우주 여행과는 목적과 의미가 완전히 달랐다. 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로 우주 탐험에 성공한 뒤 지구밖의 공간도 빼앗길 수 없는 「영토」로 인식됐다. 미국·소련간 생존경쟁의 장이 이제 인체과학의 실험장으로 바뀐 것이다.

 「노화의 비밀 탐구」. 이번 우주여행의 의의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무중력 상태에서 인체의 각 기관과 조직이 파괴되고 노화가 촉진되는 과정을 추적해간다면 이를 응용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였다. 글렌은 자신이 이번 연구의 적임자라며 기꺼이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를 자원했다.

 생체실험은 몇 가지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째는 수면 상태. 우주비행 중에 잠을 설치기 쉬운 비행사의 피로를 덜고 지구에서도 시차적응 등의 신비에 도전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글렌은 이를 위해 전극이 달린 수면기록장치를 달고 잠을 청해야 했다.

 근육 분해과정도 주요 연구대상이었다. 우주에서 근육 단백질이 급격히 파괴되는 현상과 스트레스에 관련된 호르몬 생성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위해 글렌은 우주선에서 수시로 약과 주사로 단백질을 보충하는 한편 우주선에서 채취한 소변과 혈액을 가져와 정밀분석을 의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무중력 상태에서 심장 박동 추이를 분석함으로써 앞으로 노인들의 심장 활동 이상여부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글렌은 지난 62년에도 4시간의 첫 우주비행 뒤 영웅으로 부상했으나 우주와의 인연은 끊어지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당시 대통령 존 F 케네디나 후임 린든 존슨이 『미국의 우상에게 다시 위험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며 글렌의 우주비행을 막았기 때문이다. 후배와 동료 비행사들의 달 정복을 착잡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는 64년 상원에 출마했다가 부상으로 포기하는 괴로움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그를 잊지 않고 있던 국민들은 74년 그에게 상원의 길을 열어줬고 이후 연속 4선을 했다.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서 우주비행의 꿈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자신의 우주비행 35주년 기념일에 98년 말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우주비행의 꿈은 글렌이 모든 것을 던질 생의 마지막 목표가 됐다.

 그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국립노화연구소(NIA)가 추진하는 우주에서의 노화실험에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끈질기게 전달, 마침내 지난 1월 꿈을 이뤄냈다. 나이보다 30세나 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첫번째 우주비행사라는 상징성 등도 고려됐다.

 그러나 글렌의 환희는 곧 가족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됐다. 아내 애니와 아들 데이비드(53·의사), 딸 린(52·사회사업가)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글렌의 위험한 작업을 일생 가슴 졸이며 지켜봐왔던 가족들은 또다시 그가 위험한 일에 나서는 것을 싫어했다. 미국 언론들이 글렌을 「우주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추구했던 우주개척에 대한 집념과 자기희생 정신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한편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9일 동안의 우주여행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온 글렌은 가족들에게 『세번째 우주여행을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