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MF" 그후 365일> 전자.정보통신업계 동향

 IMF사태 이후 1년 동안 우리 전자·정보통신산업은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어왔다.

 전자산업 전체의 성장을 주도하며 외국 업체의 부러움을 샀던 반도체산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해 현대와 LG의 통합이라는 극단적인 자구방안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 전자·정보통신산업이 처한 현실이다. 6백%에서 9백%에 이르는 이들 업체의 부채비율로는 경쟁력이 없으며, 합병을 통한 군살제거만이 살길이라는 재계 및 정부의 판단에 따라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견기업으로서 탄탄한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태일정밀·해태전자 등이 연이어 부도를 냈고, 벤처기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여겨지던 가산전자와 두인전자 등 전자·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물론 이들 기업은 회생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금도 마음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자·정보통신부문의 대기업들은 군살제거에 나서 일부 사업부문 매각은 물론 아웃소싱이나 분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계사업의 경우 과감하게 철수하는 등 구조조정 노력이 한창이다. 또한 최근 들어 대규모 증자와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한 재무구조 건실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경우 외국인 투자유치에 나서는 한편 분사를 통한 조직재편과 인력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경쟁력이 있더라도 수익성이 없는 사업의 경우 과감하게 매각하는 등의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화가 상당히 진전된 국내 가전산업은 IMF사태로 경영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채무의 급증이다. 국내 가전산업은 한 발 앞서 현지화를 도모한 일본 업체 때문에 더 이상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서둘러 글로벌체제 구축에 나서야 했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 현지공장을 짓느라 빌려다 쓴 외채가 IMF이후 원화환율 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무구조 악화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는 IMF이후 성장위주의 경영구조를 과감히 버리고 생존을 위한 채산성 확보로 전환하고 있다. 채산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포기하거나 줄여 몸집을 가볍게 만들고 채산성 있는 사업에 치중함으로써 생존여건을 조성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악화된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바꾸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85년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면서 최고의 수출산업으로 치켜세워졌던 국내 반도체산업은 IMF이후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격변의 회오리 속으로 내몰리고 있는 분야다. 우선 장비업체들은 올해 착수할 예정이던 공장증설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반도체 관련 매출목표를 대폭 축소하고 관련부서를 통폐합하는 등 회사내 구조조정 차원의 각종 불황타개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미국·대만 등 해외시장을 겨냥해 국내 소자업체와의 해외 동반진출을 모색함과 동시에 현지법인 설립 및 현지생산을 적극 추진하는 등 국산장비의 수출경쟁력 강화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컴퓨터업체들은 국내 컴퓨터산업 기반의 붕괴라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IMF이후 컴퓨터업체들은 정리해고, 한계사업 정리, 유관부서 통폐합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통한 살아남기 전략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업체간 전략적 제휴와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등 IMF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섰다. 특히 수출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감으로 PC와 모니터·CD롬 드라이브 등 각종 주변기기의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SW)산업도 극심한 IMF한파를 겪으면서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SW업체들은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서둘러 체질을 개선해야 하며 이를 위한 다각적인 정책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SW산업의 위기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이나 지난해 말 IMF체제에 돌입한 이후 그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다. SW의 주수요층인 기업들은 불황에 직면하자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SW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가전과 컴퓨터가 IMF로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면 이동전화 단말기산업은 IMF의 거센 한파 속에서도 내수 및 수출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개인휴대통신(PCS)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동전화 가입자 유치경쟁은 상반기 이동전화 단말기 시장에 유례 없는 호황을 몰고왔다. 상반기 동안 매출액만으로도 전년도 한해 장사를 거의 다 했을 만큼 국내 단말기업체들은 만족스런 실적을 거뒀다. 올 상반기 이동전화 단말기의 국내 보급대수는 4백30여만대로 이는 지난 96년 총 2백10만대, 97년 전체 5백40만대를 능가 혹은 버금가는 수치다. 수출 측면에서도 이동전화 단말기는 효자노릇을 했다. 올 상반기에 작년 동기 대비 41.7% 증가한 17억2천3백만달러 어치의 통신기기를 수출, 10여년만에 최대의 수출증가율을 보였으며 이 중 이동전화 단말기는 6억3천7백만달러의 수출을 기록, 작년 같은 기간보다 84.9%나 성장했다.

 전자·정보통신산업이 올 한해 동안 극심한 부진 속에서 뼈를 도려내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내년에는 엔화가치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원화의 안정세가 유지되는 등 환율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정보사회의 확산으로 정보통신분야 수요가 확대하고 반도체 등 수출주력 품목의 단가하락세가 진정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도 경기전망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우리의 주교역국인 동남아와 러시아 등의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이고 민간의 소비위축, 자금조달과 외국자본 유치의 어려움 등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병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