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오차범위의 허와 실

 우리는 혼돈 속에서 헤매지는 않지만 정확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느날 몇 시에 모이기로 약속을 했을 때 각자가 갖고 있는 시계가 맞추어지지 않는 한 모두가 시간을 지켰다 하더라도 초침까지 맞게 같은 시각에 모일 수는 없다. 하물며 생활설계를 하는 데는 정확한 진로를 미리 정해놓기가 힘든 것이며 대개 그 방향만이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확해야 할 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키를 재는 데도 재는 사람의 습관, 키를 재는 기구에 따라 어느 한계내에서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측정의 오차범위라 한다.

 달리 이야기하면 모든 과학적 측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부정확성이 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이것은 거시세계 속의 일이지만 미시세계에서는 저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원리처럼 사물 자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과학적 측정의 오차범위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가 사회생활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기관들이 내놓는 후보자들의 지지도 조사결과다.

 대개 신뢰도가 플러스·마이너스 3%라는 말을 듣는다. 한 후보는 31%의 지지도를 보였고 다른 후보는 29%의 지지도를 보였다 하더라도 신뢰도가 플러스·마이너스 3%이므로 제1후보는 최악의 경우 28%, 제2후보는 최선의 경우 32%까지 될 수 있기 때문에 두 후보는 겉보기로 누가 앞선다고 하기보다는 치열한 선두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결론을 짓는 것이 과학적이라는 뜻이다.

 즉 신뢰도 플러스·마이너스 3% 범위내에 들어 있는 두 후보의 2% 지지도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이것은 과학적인 측정치를 발표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정교한 측정기기라도 측정의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환경오염을 측정하는데 그 기기나 방법으로는 1단위 이하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측정에서는 기기상에 0.5라는 수치가 나온다. 이때는 0.5라고 발표하지 않고 측정할 수 없음(ND:Non Detectable)이라고 하는 것이 과학적이다.

 만일 먼저 사람은 ND로 하고 두번째 사람은 0.5라고 했을 경우, 두번째 사람이 측정을 정확히 잘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과학적 소양이 없는 무지한 사람의 말이 된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내재되는 오차의 범위, 신뢰도의 한계, 측정의 한계내에 들어가 있는 사항에 대해 과학적인 정확도의 우열, 더 나아가서는 선악을 따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이러한데 사회적인 현상은 그 오차의 범위가 더 크게 마련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일반사회에서는 오차범위내의 일에 너무 집착해 현상의 본체를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전부 1백 번을 시도해 단 한 번을 실수한 경우(1%)를 생각해 보자. 물론 실수하거나 나쁜 일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람이 사는 데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계적으로 1% 정도는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즉각 1%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에 착수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1%를 줄이기 위해 온갖 예방조치나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본체인 99%를 질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는 것이다. 99%를 살리면서 1%를 줄여나가는 방법이 아니라면 오히려 1%를 무시하는 것이 더 나은 조치라고 본다.

 특히 사회의 거울인 언론보도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점이라고 본다. 어떤 부정이 신문에 보도되면 「이것 큰일이구나」하고 이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엄격한 지시가 내려지고 실무자들은 경황중에 99%를 잊고 1%에만 집착해 조치를 취할 때 오히려 숨이 막히게 되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감사제도의 적용에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된다. 1% 범위내에 있는 것을 꼭 들추어 내어 조치를 취하도록 해야만 감사의 실적이 있는 것이고 99%를 더욱 살림으로 1%를 줄여나가는 총체적 제도에 대한 감사를 하는 데는 정성이 덜 담기는 경우가 많지 않나 검토해야 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