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렇게 재미있는 단말기 보신 적 있으세요? 이게 첫눈 내리던 날 우리회사 여직원이 무선통신으로 보내준 그림 메시지인데 매우 귀엽죠.』
에어미디어 장절준 사장(48)은 손바닥에 놓인 단말기를 가리키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담뱃갑만한 LCD 화면에는 「눈이 와요!」라고 흘려쓴 글씨와 함께 창 밖으로 소담스러운 눈발이 날리는 그림이 보인다.
이 단말기의 이름은 글로톡(Glotalk). 무선통신사업자인 에어미디어가 제공하고 있는 문자휴대통신 서비스 「013 에어포스트」용 단말기다.
『보세요, 얼마나 신통한지. 글자뿐만 아니라 펜으로 그림까지 그려 보낼 수 있어 여간 편리한 게 아닙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약도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죠. PCS·핸드폰·삐삐와도 문자메시지를 교환할 수 있어요. 그뿐인가요. 전자우편은 물론 증권시세까지 척척 조회할 수 있습니다. 아참, 위치조회기능을 빼놓으면 안되죠. 제 아내가 집에서 전화를 걸면 글로톡 음성사서함에서 위치를 알려줍니다.
회사에서 일한다고 말해놓고 술집가면 곧바로 들통난다는 얘기죠.』
사실 에어미디어사는 지난 96년 6월 고려아연과 데이콤·동남산업 등 30개사의 컨소시엄업체로 출발해 무선통신사업자 라이선스를 획득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해 왔다.
IMF가 겹치면서 주주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심하게 타격을 받은 것. 그동안 수협의 이동뱅킹 서비스를 비롯 삼성화재의 보상업무 무선전송 서비스, 주유소의 무선신용카드 결제시스템, 캡스의 무선보안시스템 등 기업시장을 개척하긴 했지만 거둬들인 수익은 시설비 투자에 훨씬 못 미쳤다.
글로톡을 이용한 문자휴대통신 서비스 「에어포스트013」은 이처럼 휘청거리던 에어미디어사가 사운을 걸고 있는 신규사업. 협력사인 CNI사가 글로톡을 만들어 납품하고 정보서비스 개발은 에이미디어가 맡아 지난 9월부터 가입자를 모집했다. 11월말 현재 가입자 수는 약 8천명.
『손익분기점이 되려면 최소한 15만명 정도는 고객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누구도 선보이지 않았던 신개념의 서비스인데 그 정도 반응이면 안심해도 좋다는 게 저희들의 판단입니다.』
장 사장은 현재는 가입자가 1만명도 안되지만 조만간 크게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사실 에어미디어사는 요즘 잔칫집 분위기. 색다른 문자통신을 즐기려는 젊은이와 증권시세 같은 정보 조회용 단말로 쓰려는 비즈니스맨, 그리고 음성메시지 대신 문자메시지가 꼭 필요한 청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 서비스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장 사장은 일찍이 문자휴대통신처럼 미개척 분야에 뛰어들어 경영수업을 받았던 인물.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수출부 과장으로 일했던 82년, 그는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자 아예 영국 현지법인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해 회사를 놀라게 했다.
『판매법인을 세워 적극적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우겼죠. 서른두살의 나이에 삼성전자 서유럽시장 개척을 책임지게 된 셈인데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비결은 딱 두가지였죠. 우선 시장조사를 해 보니 비즈니스 플랜이 확실했고, 베테랑 현지직원을 채용해 1백%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뢰만은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 「감놔라 대추놔라」 하지 않고 무조건 맡겨버린 겁니다.』
15년간 몸담았던 삼성에서 동방페레그린증권 상무로 옮기고 다시 에어미디어를 맡게 된 지금까지 비즈니스 플랜과 신뢰가 곧 성공의 열쇠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당장은 좀 어렵더라도 시장이 무궁무진한 분야가 바로 문자휴대통신이죠. 신뢰를 바탕으로 실무자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주는 효율적 시스템으로 시장을 개척한다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에어포스트로 물꼬를 텄으니 이제 무선통신사업분야의 선두주자가 될 겁니다.』
다가올 99년엔 가입자 15만명을 확보해 흑자경영의 기틀을 다지는 게 장 사장의 목표다.
<이선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