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두진컴퓨터 사장
우리 사회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전자상거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급진전될 것이며 어떻게 이 사이버시장을 장악하느냐가 최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지금 전자상거래를 위한 법적·제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와 민간기업에서 전자상거래 정착을 위해 다각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전자상거래는 일상적인 상거래와 큰 차이가 없다. 일반적인 상거래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그 대금을 청구해서 결제하는 행위라면 전자상거래 역시 청구나 결제방법에서 컴퓨터라는 매체를 이용할 뿐이지 과정은 동일하다. 근본적인 차이는 눈에 보이는 청구서와 납부(결제)한 영수증의 실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데이터로 처리되기 때문에 「확인에 대한 문화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화 차이도 크게 해소되고 있다. 이는 화폐의 개념이 현금 또는 어음, 수표 등의 현물에서 이제는 신용카드와 직불카드의 보급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은행에서 시행하고 있는 홈뱅킹이나 펌뱅킹을 통한 자동결제 서비스는 전자상거래를 추진하는데 걸림돌인 문화의 차이를 크게 해소시켜 주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처럼 결제제도가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청구시스템(Billing System)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금년 들어 몇몇 이동통신 회사에서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한 온라인 빌링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아직은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97년 한해동안 지급결제 건수는 7억건으로 이들 중 약 6억8천건이 청구서가 인쇄되어 소비자에게 배달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보통 1장의 청구서를 인쇄하고 발송하는데 드는 비용을 5백원으로 가정한다면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도 청구의 비용은 3천4백억원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이 청구를 위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이러한 낭비요인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청구서를 하나로 통합해 보내주는 통합 빌링서비스를 시행하기에 이르렀으며 나아가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통신망을 이용한 청구서비스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빌링서비스를 시행한다면 1회의 청구비용을 5백원에서 약 50원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WTO라는 하나의 경제질서 속에 재편되고 있으며 금융·유통 등의 업종은 세계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정도로 다국적 기업의 전유물로 경제후발국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IMF체제 이전부터 금융업에 대한 빅뱅의 필요성을 느끼고 부분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IMF의 지원을 요청하는 최악의 경제체제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체제에서 현재 수십 개에 달하는 보험·카드·증권 등 금융업계에서 발행하는 카드사용내역·청약서·보험증서·만기안내·최고안내·연체안내·지로영수증 등 수많은 양식들에 대한 발행 및 발송비용, 관리비용, 기타 분실로 인한 분쟁 비용 등의 직·간접 비용을 계산해 보면 가히 천문학적인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금융·유통 관련 업종만이라도 통합된 온라인 청구 및 지불 서비스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킨다면 우리나라의 대외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돌입하게 될 것이며 금융·유통업종의 시장개방도 전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닐 것이다.
특히 온라인 청구 및 지불 서비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종이를 절약하고 소비자는 영수증을 보관하지 않아도 되어 이중청구에 대항할 수 있으며, 매달 10여 통 이상의 청구서 및 영수증을 가계부에 넣어 관리해 가며 납부일자를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주거지를 옮길 때마다 청구지 이동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역시 온라인 청구서비스의 무시할 수 없는 장점에 속한다.
물론 정보보안과 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과제는 화두로 남겠지만 우리가 얻는 경제적 이익에 비교한다면 미미하리라 생각한다. 위조지폐 때문에 화폐를 없애자는 의견이 의미가 없듯이 말이다.
다만 전 국민에게 컴퓨터와 통신망 보급이 문제가 되나, 지금의 신용카드나 현금지급기처럼 공공장소와 은행·우체국 등에 단말기를 설치한다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자신에게 온 청구서를 조회하고 결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제도와 문화의 변화에 대한 거부감과 역작용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선택 여부와 관련 없이 세계는 전자상거래 질서 속으로 급속도로 접어들고 있으며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치열한 노력은 과거 무법 천지였던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나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전쟁의 차원에 돌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제도가 어떠니, 기술이 어떠니, 아직 수준이 안되어서 그렇다는 따위의 안이한 사고에 안주해 있을 여유가 없다. 엄청난 국가의 이익이 눈앞에 있는데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