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엔 디스플레이 세상이 열립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듯이 이제 멀티미디어 정보는 예외없이 디스플레이를 거치게 되는 거죠. 컴퓨터뿐만이 아닙니다. 머지 않아 TV·전화·냉장고·세탁기까지 집안의 가전제품들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로 의사소통을 하는 날이 올 겁니다.』
삼성전자 김상수 이사(43)는 D램이 빠진 반도체를 거론할 수 없듯, TFT LCD 없는 디스플레이도 생각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흔히 TFT LCD의 전도사로 업계에 알려진 인물이다.
김 이사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것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던 지난 90년. 그 해 기반기술담당 과장으로 입사한 후 계속 TFT LCD 개발팀을 이끌어 왔다. 알고 보면 유학을 떠나기 전 삼성반도체를 다니다 퇴사한 후 재입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삼성과 그의 인연은 더욱 각별하다. TFT LCD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지난 9년간 그는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벽걸이 TV용 22인치 TFT LCD로 95년 멀티미디어기술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97년에는 세계 최초의 30인치 제품 개발에 성공했던 것.
『TFT LCD는 20인치 이하에서만 경쟁력이 있다고들 했죠. 상품성은 둘째고 우선 기술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게 통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30인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디스플레이 역사를 새로 썼다는 게 저희 직원들의 보람이고 또 자부심입니다.』
김 이사는 회의실 한 쪽에 설치된 30인치 디스플레이를 가리키며 이것이 그동안 노력의 산물이라 힘주어 말한다.
이 제품은 화면 밝기가 2백50 칸델라, 소비전력이 초절전형인 40와트, 두께 4.5㎝, 설치면적은 같은 크기 CRT의 5분의 1로 개발되어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TFT LCD분야의 최첨단기술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아내고 있다. 수백만개의 트랜지스터가 내장된 TFT 기판과 컬러 필터를 만드는 「기판제조기술」, 이 두 개의 유리판 사이에 액정을 주입해 일정한 방향으로 배열시키는 「액정공정기술」, 그리고 액정 셀을 동작시키는 「구동제어기술」 세 부분의 기술력이 합쳐진 결과다. 여기에 먼지가 앉은 소자를 피해감으로써 액정디스플레이 상의 결함을 방지하는 이른바 자동 결함구제기술을 채택해 청정도를 높혔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은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인치당 가격과 수율을 개선해 대화면 LCD시장을 개척하는 일이라고 김 이사는 말한다. 현재 이 제품은 현재 모듈당 3만달러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HDTV보다 선명한 해상도를 무기로 항공기 관제용 및 군사과학용 모니터를 비롯해 캐드캠·전자출판·증권시장의 현황판 등 니치마켓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내년부터 14인치와 15인치를 주무기로 데스크톱PC용 디스플레이시장에서 브라운관과 한판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사실 PC용 디스플레이 대체수요만으로도 TFT LCD시장은 황금어장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30인치 이상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벽걸이TV시장을 개척할 겁니다. 저기 저 벽에 걸린 액자 보이시죠. 앞으로 저렇게 크고 얇은 벽걸이TV시대가 오면 어떤 디스플레이가 채택될 거라고 보십니까?』
김 이사는 회의실에 걸린 대형 액자를 가리키며 정답은 LCD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거론되고 있는 PDP는 소비전력이 높고 열이 많이 발생하는 데다 HDTV 수준의 고해상도를 구현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에 비해 LCD는 오랫동안 쳐다봐도 눈의 피로가 거의 없고 전자파도 발생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화질이 선명해 벽걸이TV용 디스플레이로 손색이 없다는 것.
『한국은 디스플레이 강국입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는 게 또 첨단기술분야입니다. 그만큼 과감한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죠. 두고 보십시오. 일본보다 늦게 시작해 결국은 추격에 성공한 브라운관의 신화를 이제 TFT LCD에서 재현해 보이겠습니다.』
<이선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