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공학에는 「멜트다운(melt down)」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원자로가 냉각장치 고장으로 과열되어 녹아내리는 사고를 말한다. 이때 발생하는 열은 무척이나 고온이기 때문에 원자로 자체는 물론이고 원자로가 서 있는 땅까지도 계속 녹아내려 밑으로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일명 「차이나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서구 사람들이 지구의 반대편에 중국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녹아내리는 원자로의 열이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붙인 이름이다. 실제로는 중력 때문에 지구 중심에서 멈추겠지만 아무튼 「차이나 신드롬」은 원자력 발전소의 끔찍한 사고 가능성을 경고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차이나 신드롬」은 또한 79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핵발전소의 사고 가능성을 다룬 것이다. 핵발전소에 근무하는 한 기술자가 원자로의 결함을 발견하지만 기업측은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또 기술자가 사건을 언론에 전하려 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며 심지어는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목숨까지 위협한다.
이 영화는 불과 몇 주 뒤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79년 3월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에서 유사한 사고가 실제로 일어나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영화 「차이나 신드롬」에는 제인 폰다와 제프 브리지스가 언론사 기자로 나왔고 고독한 투쟁을 벌이다 희생되는 양심적인 기술자 역은 잭 레먼이 연기했다. 우리나라에는 10여년 뒤에야 뒤늦게 TV에서 방영이 되었고 비디오로도 출시되었다.
「차이나 신드롬」과 함께 또 하나의 대표적인 핵 안전 관련문제를 다룬 영화가 「실크우드(84)」다. 역시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된 이 영화는 「차이나 신드롬」과는 달리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해 제작한 것이다.
74년 11월 13일, 미국 오클라호마 인근 고속도로변에서 카렌 실크우드라는 28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는 플루토늄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이었으며 조사결과 뉴욕타임스 기자와 OCAW(석유·화학·원자력 노동자) 노조의 간부를 만나 중요한 서류를 전달하러 가던 길이었음이 밝혀졌다. 그 서류는 회사가 심각한 안전수칙을 위반한 증거들을 무수히 수집한 것이었는데, 사고 현장을 조사한 경찰이 분명히 흩어진 서류들을 목격했는데도 그 이후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실크우드는 회사에서 발생한 사고로 플루토늄에 오염되자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하려 했었다. 그 이전 4년 동안에 그 회사에서는 24건의 사고가 일어나 87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오염되었으며 실크우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사측은 집요하게 방해공작을 폈다.
실크우드는 사망 얼마 전부터 신체가 매우 심하게 방사선에 오염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스런 화학제 세척을 받아야 했다. 조사 결과 그의 집에서 플루토늄에 아주 심하게 오염된 출처 불명의 소시지들이 발견되었는데 회사측은 오염물질을 수거해간다면서 집의 살림을 몽땅 싣고 가버렸다. 당시의 친구는 벽만 휑하게 남아 있는 텅빈 방에서 실크우드가 울면서 무너져 내리던 장면을 증언했다. 그는 자동차 사고(나중에 사고 차량에서 다른 차에 받친 흔적이 발견되었다)가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플루토늄 중독으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플루토늄을 신체에 직접 투입할 경우 코브라의 독보다 2만배나 더 위험하다고 한다.
79년, 지루한 법정 투쟁 끝에 실크우드의 부모는 1천5백50만달러의 보상판결을 받았으며 플루토늄 공장은 폐쇄되었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