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컴퓨터 핵실험

 핵실험을 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대규모 핵실험의 경우 우선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반대여론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핵실험을 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는 날도 멀지않아 도래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부에 소속된 로스앨라모스 국립연구소는 최근 「블루 마운틴」이라는 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능을 갖고 있는 슈퍼컴퓨터를 설치, 대규모 지하 핵실험 대신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시뮬레이션을 통해 핵무기를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인도 등이 공해상이나 지하에서 대규모 핵실험을 잇따라 실시함으로써 전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은 첨단 컴퓨터를 이용해 국제 포괄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준수할 수 있는 중대한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미국이 이처럼 국제조약을 준수하면서도 핵무기의 안전성과 보안, 신뢰성 유지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블루 마운틴이 갖고 있는 세계 최강의 그래픽 성능 때문이다.

 블루 마운틴은 대형 컴퓨터 표준속도 테스트 가운데 하나인 「린팩에서 1.6테라Ops(trillion operations per second:1초에 1.6조회 연산처리)」의 데이터 처리속도를 보여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 슈퍼컴퓨터는 48대의 서버와 총 6천1백44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장착하고 있어 초고속 데이터 처리는 물론 외부 컴퓨터와의 통신속도도 6백50Gbps를 기록하는 등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리콘그래픽스 관계자는 『블루 마운틴은 로스앨라모스의 무기 과학자들에게 핵 저장의 안전과 신뢰성을 분석할 수 있는 과학적 도구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면서 『블루 마운틴은 로스앨라모스가 진행중인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99년에는 핵 저장에 관련된 시뮬레이션을 수천만번 실시, 8천만조회 이상의 연산을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 에너지부는 오는 2004년까지 연산처리 속도 1백 테라Ops 도달을 목표로 한 「제5 세대」 고성능 컴퓨터를 개발하고 있는데 블루 마운틴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2대의 슈퍼컴퓨터 가운데 IBM의 「퍼시픽 블루」에 이은 두번째 제품이다.

 빌 리처드슨 에너지부 장관은 『블루 마운틴은 미국의 CTBT 준수의지를 뒷받침해줄 뿐만 아니라 고속컴퓨팅과 첨단 시뮬레이션 기능을 통해 의학·제조·자동차 안전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고 세계 기후변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핵실험이 이번에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실제 핵폭발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를 핵무기 개발을 위한 컴퓨터 모의실험에 폭넓게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핵무기 실험을 1천번 이상 감행한 미국은 지금까지 이 데이터들을 사용해 1조번 이상의 또 다른 컴퓨터 모의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실험을 통해 얻은 정보는 핵무기의 각 구성 요소들이 실제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로스앨라모스 연구소의 마이클 번스 대변인에 따르면 컴퓨터 모의실험은 핵무기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핵무기를 설계하고 운반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게 제공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의 가장 큰 무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공할 만한 연산처리 능력이다. 컴퓨터의 이러한 능력은 80년대 이전만 해도 인구통계 등 극히 제한된 분야에서 주로 사용됐으나 최근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그래픽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활용분야 또한 애니메이션은 물론 가상 기상예측과 핵실험 분야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실리콘그래픽스는 「개미」를 비롯한 애니메이션영화 장면을 제작하는 데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던 그래픽 기술을 세계 최첨단 그래픽 시스템인 블루 마운틴에 결합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그래픽 처리기술에 힘입어 몇주 이상 걸리던 복잡하고 과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이제 단 몇분 만에 얻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