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성(性)을 뒤바꾼 신데렐라 드림을 경쾌하게 끌어낸 로맨틱드라마.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평범하고 순수한 남자가 화려한 톱스타를 만나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는 동화 같은 러브스토리다.

 연출보다는 제작으로 제도권 영화에 화려하게 입성했던 이은 감독의 데뷔작. 영화가 꿈과 따뜻함에 대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은 일단 기획단계에서부터 그러한 욕구를 철저하게 만족시켜 주고 있는 작품이다. 새로운 멜로 팬터지를 만들어내는 요리솜씨는 다소 밋밋하지만 구태의연한 정서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 정갈함이 느껴진다. 제목이 암시하듯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다고 단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이 순수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야구심판이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의 신선감과 디테일한 묘사로 현실적인 공간에서도 생명력을 얻는다.

 교통의경인 범수(임창정 분)는 어느 날 무면허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연극영화과 대학생 현주(고소영 분)를 만난다. 범수는 딱지를 끊는 대신 학교운동장에서 현주에게 운전연습을 시키고, 둘은 어느덧 서로의 꿈을 얘기하며 마흔일곱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어렵게 사랑을 고백하는 범수 앞에서 현주는 그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며 유학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야구 선수에서 야구 심판이 되기로 결심한 범수는 꿈을 이루고, 라면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던 현주는 유학 도중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유명 스타로 급성장한다. 범수는 스타가 된 현주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제는 자신과 너무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그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범수는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하기 위해 온 현주와 다시 재회하게 되고, 연예계 생활에 지친 현주를 위로하며 꿈 같은 시간을 보낸다.

 영화 「비트」에서도 함께 공연했던 임창정과 고소영은 비교적 무난한 점수로 자신들의 새로운 임무를 완수해 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가장 밀도높은 재미를 선사하는 부분은 역시 야구장 신이다. 현역 야구인들을 출연시키면서, 경기 주변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장면은 영화가 지루해질 때쯤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엄용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