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반도체분쟁" 승소 의미

 지난해 8월 한국 정부의 제소로 시작된 한·미 반도체 분쟁이 한국 측의 승소로 마무리됨에 따라 4년동안 계속된 미국의 반덤핑 족쇄에서 원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선진국과의 무역분쟁을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활용해 승소했다는 측면에서 반도체 분야는 물론 전반적인 대미 교역 환경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조치의 부당성을 들어 WTO에 제소했으나 미국 측의 반덤핑 조치 철회로 WTO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반도체 제소는 우리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WTO 분쟁 절차를 이용한 첫 사례로 남게 됐다.

 이번 분쟁의 발단은 지난 92년 한국의 반도체업체들이 D램제품을 미국에 덤핑 수출하고 있다며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가 상무부에 조사를 신청하면서 비롯됐다.

 미 상무부는 지난 93년 5월 LG반도체와 현대전자에 대해 각각 4.97%, 11.16%의 덤핑마진율을 적용했다.

 미 상무부는 이후 3차례에 걸친 연례재심에서 이들 업체에 대한 덤핑 혐의를 찾아내지 못하고 0.5% 미만의 미소마진 판정이 계속됐다. 0.5% 미만의 미소마진은 사실상 무혐의 처리된다.

 미국의 반덤핑 관련 규정은 △3년 연속 덤핑을 하지 않고 △향후 재덤핑시 언제든지 조사에 응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며 △조사 철회시 앞으로 덤핑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3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반덤핑 조치를 철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3년 연속 무혐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마지막 조항을 내세워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 반덤핑 조치를 철회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우리 업계와 정부는 이 조항을 정상적인 교역을 방해하는 독소 조항으로 비난했으며 미국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지난해 8월 WTO 분쟁해결기구(DSB)에 제소, 분쟁해결 패널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WTO 패널에서 조사가 진행중인 지난 9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에 대해 각각 3.95%, 9.28%라는 고율의 덤핑 마진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4차 연례재심 결과를 발표, 국내업체의 반발을 샀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WTO 패널 판정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고의로 높은 마진율을 매겼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결국 이번 분쟁에서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통상외교를 전개, 미국의 관련 조항이 개정돼야 한다는 WTO 판정을 이끌어내게 된 것이다.

 이번 WTO의 판정으로 미국은 반덤핑 관련 조항의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미국측이 현대전자와 LG반도체 제품에 대해 고율의 덤핑마진을 판정한 상황을 거둬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산 반도체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효과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LG와 현대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 95년 17억2천1백만달러를 정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해 97년에는 7억6천3백만달러로 줄어들었다. 또 올들어 지난 9월까지도 5억2백만달러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승소는 미국으로 하여금 향후 외국업체에 대한 반덤핑 규제를 보다 신중히 적용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현재 반덤핑 규제를 받고 있는 한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족쇄를 조기에 푸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

* 한·미 반도체 분쟁 일지

△92년 4월: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사 한국산 D램에 대한 반덤핑 제소

△93년 5월:미 상무부 덤핑 마진율 확정(현대 11.16%, LG 4.97%, 삼성 0.82%), 삼성전자 반덤핑 조치 대상에서 제외

△96년 4월:1차 연례재심 확정(현대 0.1%, LG 0.0%)

△96년 12월:2차 연례재심 확정(현대 0.09%, LG 0.01%)

△97년 7월:3차 연례재심 확정(현대 0.0%, LG 0.01%)

△97년 8월:한국 정부,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 제소

△97년 10월:한·미 양자간 협상 결렬

△98년 1월:WTO 분쟁해결기구(DSB) 분쟁해결 패널 설치

△98년 6∼7월:WTO 패널 회의 개최

△98년 9월:4차 연례재심 확정(현대 3.95%, LG 9.28%)

△98년 10월:WTO 중간보고서 발간

△98년 12월 7일:WTO 한국 승소 최종 판정

△98년 12월 16일:WTO 최종 보고서 배포(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