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98년 국내 반도체산업은 정부 주도의 전반적인 산업구조 조정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강도 높은 변혁의 시간을 경험한 한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98년은 96년부터 계속된 D램 가격폭락의 여진이 여전히 국내 반도체 관련업계에 불안감을 주면서 시작됐다.
1월 초까지만 해도 97년 말부터 시작된 반짝 특수에 힘입어 상승세를 타던 D램 가격이 2월 이후 또다시 내리막길로 들어서면서 국내 반도체산업은 엄청난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급기야 주력제품인 16M D램과 64M D램 평균 거래가격이 생산원가에도 못미친다는 1달러대와 7달러대로 폭락,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3사가 찾은 돌파구는 이른바 감산정책이었다. 삼성전자에 이어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7월부터 시작한 감산은 각사가 매월 1주일에서 10일 정도씩 생산라인 가동을 중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국내수출의 10% 이상을 걸머지면서 효자산업으로 일컬어지던 반도체산업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시점에 시작된 감산정책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에 충분한 시도였다. 3년 가까이 폭락을 거듭하면서 반도체3사의 애를 태워온 D램 가격이 상승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때를 맞춰 최대 경쟁국인 일본의 메이저 반도체업체들이 한국업체들의 감산정책에 동조하면서 전반적인 세계 반도체 수급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상당수 해외 반도체업체들이 D램 생산라인을 축소하거나 폐쇄한다고 잇따라 발표, D램 시장에 공급부족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2년여 만에 D램 거래가격이 상승무드를 타게 됐다.
특히 최근의 D램 가격 상승세는 현물시장과 고정거래선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엔고에 시달리는 일본의 반도체업체들이 추가적으로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돼 국내업체들에는 엄청난 반사이익이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7월경 세계 반도체 현물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인 2달러와 10달러 선을 회복한 뒤 보합세를 유지해 온 16M 및 64M D램 가격이 최근 계속되는 물량 부족으로 일부 제품의 경우 11월 들어서면서 각각 2.50달러와 11달러 선에 육박하는 등 급등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물시장 가격과 함께 비교적 가격변동이 작은 고정거래선 가격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급상승 국면을 타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산업은 최고 호황기였던 95년에 버금가는 전성기가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5∼6월 8달러 선에서 형성됐던 64M D램 가격이 10월 한국과 일본 업체들의 요구로 10% 가량 오른 9달러 선으로 상향조정되면서 국제 D램 시세는 전반적인 오름세를 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처럼 3년 만에 회생기미를 보이던 국내 반도체산업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IMF체제로 인한 결정적인 전기를 맞는다.
정부가 이른바 대기업 빅딜대상 업종으로 반도체산업을 선정하면서 국내 대표 수출산업이던 반도체가 한순간에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상반기 수천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합병해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업체로 육성한다는 정부의 빅딜계획은 그러나 반도체 고유의 특성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는 반론이 제기되면서 업계의 반발에 상당기간 주춤거리는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연말에 들어서면서 데이터퀘스트·IDC·세미코 리서치 등 세계적인 반도체시장 조사기관들이 99년부터 D램 경기가 급속히 호전될 것이라는 일치된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지난 2년여간 계속된 가격폭락에 시달려온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적으로는 기존 D램 사이클보다 훨씬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98년 반도체산업의 특징이다.
일부 16M D램 제품의 미주지역 현물시장 가격이 생산원가 이하로 급락하는 등 16M D램 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세계 메모리 반도체업체들이 64M D램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시작, D램 시장은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64M로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또한 반도체 장비시장은 소자산업의 불황을 반영하듯 국내 반도체업계의 투자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설비구매가 급감, 전년도 시장의 42% 수준인 13억5천만달러 규모에 머물러 사상 최악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장비의 국내 생산량은 2억7천만달러 정도에 그쳐 지난해의 7억9천만달러 규모보다 무려 64% 가량 줄어들며 장비의 자급비중도 21% 선에서 14%대로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국내 장비시장의 급격한 침체로 지난 8월말까지 집계된 국내 반도체 장비 생산량은 전공정 장비 3천6백만달러, 후공정 장비 5천3백만달러 가량이며 검사 및 기타 장비가 각각 3천1백만달러와 4천1백만달러를 기록, 총 1억6천만달러(수출물량 3천3백만달러 포함) 수준에 머물렀다.
반도체 장비시장의 급격한 침체와 함께 웨이퍼·리드프레임 등 주요 반도체 재료시장도 전년대비 17% 정도 감소한 19억2천만달러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D램 가격의 하락에 따른 경기침체로 소자 생산업체들의 공정개선과 반도체 감산이 본격화되면서 재료 사용량이 크게 줄어들고 재료가격 인하요구도 점차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포토레지스트·스퍼터링 타깃·특수가스 등의 재료에 대한 국내업체들의 잇따른 시장참여와 생산확대에 힘입어 전체 재료수요 가운데 10억달러어치 이상이 국내에서 생산됨으로써 반도체 재료의 국산화율은 지난해보다 5%포인트 가량 상승한 56%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합물 반도체산업은 가능성과 취약성이 극명하게 대조된 한해로 마감됐다. 90년대 초반부터 국내 전자업계가 유망분야로 선정, 꾸준히 육성해왔던 화합물 반도체산업은 IMF 사태를 맞아 구조조정의 1순위로 정리대상이 됐다. 삼성전자·현대전자·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사업을 모두 포기하거나 구조조정을 단행, 전반적으로 분위기를 위축시킨 데 이어 CTI반도체·수산스타 등 중견기업의 부도나 화의신청 등이 잇따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합물 반도체산업의 가능성도 보여준 한해였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레이저 다이오드를 생산하기 시작한 삼성전기는 관련매출이 크게 늘었으며 포인터용 레이저 다이오드 생산과 관련해서는 세계적인 생산규모를 구축했다.
<부품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