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과 일본의 유료 성인정보 사이트들이 버젓이 한글 안내판과 광고문을 내거는가 하면 아예 전문을 한글로 서비스하는 곳도 등장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사이버 포르노 공방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이버 포르노는 인터넷이라는 치외법권에서 태어난 독버섯』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청소년들을 차단하는 장치는 필요하지만 성인들도 문화를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폐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항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들 포르노 사이트에는 한국인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인터넷 포르노의 천국으로 불리는 「더 시티(The City)」는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 중 하나다. 일본의 6대 포르노비디오 메이커와 포르노 출판사들이 손잡고 지난 95년 문을 연 이곳은 방대한 포르노 영상을 무차별 살포하기로 악명 높다. 누드화집과 음란소설·포르노CD·만화영화는 물론이고 실제 포르노숍에서 판매되는 비디오를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주문형비디오(VOD) 프로그램만도 수백편에 이른다. 특히 24시간 쉬지 않고 틀어주는 포르노 생방송 「라이브 스페셜 이벤트」는 더 시티만의 트레이드 마크. 게다가 요즘엔 일본 윤락정보 잡지들이 제공하는 섹스관광 안내 및 원조교제 알선광고까지 게재하고 있어 사이버 매춘의 온상으로 눈총을 받는 초대형 포르노 사이트다.
지난 1일 이곳에는 「안녕하세요, 이제 여러분도 일본 포르노의 진수를 맛보실 수 있게 됐습니다」라는 내용의 한글인사말이 등장했다. 부쩍 출입이 잦아진 한국인을 위해 광고부터 본문까지 완벽한 한글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의 성인게시판과 뉴스그룹에는 ID와 비밀번호를 은밀히 거래하는 등 포르노 마니아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밖에 영어권 네티즌을 겨냥해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시킨 「동경 스트리트 걸」에 한글안내판이 나붙는가 하면, 아예 한국인 고객을 의식해 「Krazy Korean Cunts」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사이트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재미교포가 운영하는 포르노 사이트들도 예외가 아니다. 「ASIAN 101」 「KGIRLS」 「Korean Babes」 「야설의 문」 「서울 나이트」 「코리언 시티」 등이 앞다투어 한글 게시판과 광고문을 싣고 있는 것. 이같은 분위기를 틈타 국내 정보제공업체(IP)들도 해외 인터넷접속서비스업체(ISP)를 통해 포르노 사이트를 구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근친상간이나 윤간, 아동 포르노, 수간 등 미국에서조차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음란물을 올리는 곳이 있는가 하면 「빨간 마후라」 「여배우 이모씨의 자위행위 녹화장면」 「화장실 몰래카메라」 등 시중에서 불법으로 유통되는 포르노 비디오테이프와 CD롬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한글지원 사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자 PC통신업계에서는 『성인정보가 폐쇄된 이후 해외의 사이버 포르노 제공업자들이 한국인들을 봉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무조건 음란물이라는 명목으로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성인들이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허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5월 음란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1심 재판결과를 기다리고 있거나 이미 벌금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준비중인 인포숍과 천리안의 성인정보 IP들도 『인터넷 포르노에는 속수무책인 사법부가 신체 일부를 모자이크한 누드사진을 마지노선으로, 사회정서상 수용이 가능한 성인정보를 내보낸 IP들에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항변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더욱 과감한 포르노 허용론을 제시한다. 해외에 서버를 둘 경우 현실적으로 공권력을 이용한 단속이 무의미하며 사이버 포르노를 전면 자유화하는 게 오히려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포르노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되면 오히려 음성적인 거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한다.
이와 관련,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입장은 단호하다.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정보를 「모든 연령」과 「성인용」 「등급외」 3가지로 표기하는 정보이용 등급제를 내년 3월 이후 시행해 사이버 포르노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에 대한 세칙을 준비중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안동근 팀장은 『앞으로 보다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야 하겠지만 등급외 판정을 받을 경우 ISP의 서비스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이용약관 변경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홍보담당자인 이은경 과장은 『앞으로 홈페이지(http://www.icec.or.kr)를 이용해 유해정보 차단 프로그램인 NCA 패트롤을 무료 보급하고 전화(02-3415-0115)나 웹으로 신청하면 CD롬 버전을 우송해주는 등 청소년 보호대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실제로 내년부터 정보내용 등급제가 실시되면 사이버 포르노 공방전은 더욱 거세질 것이 틀림 없다.
특히 등급외 판정과 관련, 네티즌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미 인터넷 등급제를 도입한 미국의 경우 추후 형사처벌은 가능하지만 포르노의 유통 자체를 원천봉쇄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오락용 소프트웨어 자문위원회(RASCi)는 인터넷 정보를 폭력·누드·성행위·언어 4가지 카테고리로 나누고 각각 다섯가지 등급으로 분류한다. 이 중 누드의 판정기준은 △0등급-누드나 신체노출이 전혀 없는 정보 △1등급-약간의 신체노출 △2등급-부분적인 누드 △3등급-신체 앞쪽을 노출시켰으나 성적이 아님 △4등급-충동적인 신체 앞부분 누드 등이다. 그러나 음란에 대한 기준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엄격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외설·음란 정보를 완전 퇴출시켜야 한다는 보수적 사회단체들의 의견과 하드코어 포르노물까지 성인용에 포함돼야 한다는 과격한 포르노 옹호론자들의 주장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모자이크 처리한 누드사진을 과연 성인용으로 포함시킬 것인지의 여부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