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자고 나면 또 다른 상점이 「뚝딱」하고 생겨난다. 유통회사든 제조회사든 인터넷에 상점 하나 세워놓지 않으면 뭔가 뒤떨어졌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96년에 처음 등장, 그 해 2개에 불과했던 국내 인터넷 상점은 지난해에 20여개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 말에는 3백50여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열 배 이상씩 늘어난 셈이다. 내년 말에는 국내 인터넷 상점 수가 1천5백개에 이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델컴퓨터가 인터넷을 통해 하루 1천만 달러의 매상을 올렸다는 뉴스나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이 세계 최대의 도서유통회사로 부상했다는 소식들은 이미 인터넷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나 준비하고 있는 회사 모두의 꿈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뉴스들은 태평양 건너 지구촌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선·오라클·IBM 등 미국 회사들이 전자상거래 붐에 편승해 돈을 벌고 있을 뿐 아직 한국 기업이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없다. 과연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나아질 것인가.
인터넷에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기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를 미국 정부, 미국 기업, 미국 소비자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인터넷에 상점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상점의 명칭을 등록할 때부터 미국의 명칭등록기관에 돈을 내고 영어로 된 상점 명칭을 신청해야 한다. 정보유출을 우려하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보안 프로토콜이라도 설치하려면 역시 미국 회사에 돈을 내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또 인터넷 상점의 책임자는 정기적으로 보안 프로토콜 개발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아 상점운영과 관련한 질문에 영어로 대답해야 한다. 미국 기업이 한국과의 시차를 고려하지 않고 자사 근무시간에 전화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 땅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로 장사를 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은 분명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나 기업은 이같은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이미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미국을 닮아가지 못해 안달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조달한 전자상거래의 「수단」들을 이용해 실물시장에서의 상거래가 더욱 효율적으로 바뀌어 소비자에게 다양한 이익을 가져다 주고 기업의 매출증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수단의 종속」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터넷 소비자는 영어를 사용하는 인터넷 소비자와 비교할 때 그 규모가 보잘것 없다. 기업들의 상거래 관행이나 소비자들의 쇼핑문화, 금융기관들의 투자관습, 정부의 정책 등 모든 면에서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인터넷의 확산은 미국에서 새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미국인들과 동시에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하고 미국인들이 보는 것을 우리도 같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는 종종 우리가 미국과 동일한 사업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뜨리며 아마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사실은 점점 더 미국에 종속되어 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형」 전자상거래에 관한 모든 논의는 「전자상거래」가 정보통신산업이 아니라 유통업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도입의 필요성, 효과, 도구, 업무흐름, 제도 등 전자상거래의 모든 것이 유통산업을 중심으로 논의돼야 한다. 이것은 진정한 한국형 전자상거래의 기초를 닦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최상국 데이콤인터파크 콘텐츠사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