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쫓기는 탈주범, 딸의 수술비가 없어 은행돈을 훔친 소심한 은행원, 그리고 순진한 프로그래머가 여자 화장실에서 마주친다. 우연히 만난 세 사람은 자신들을 도망자로 만든 부패한 사회 권력층에게 복수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스페이스를 이용해 구린내 나는 돈과 권력을 해킹하는 것. 부도덕한 사채업자의 돈을 훔쳐 명동 한복판에서 뿌리는 기이한 행각 덕분에 이들에겐 사회적 관심이 쏠리게 된다. 경찰과 언론의 추적을 교묘하게 피해 달아난 이들 정보시대형 대도가 남겨 놓은 유일한 흔적은 인터넷 사이트의 미꾸라지 그래픽 뿐.」
장편소설 「미꾸라지」는 세 사람의 주인공이 인터넷으로 사회권력을 해킹하는 이야기다. 이 책을 펴낸 전해주씨는 하이텔 문학관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소설가이기도 하다. 지난 94년 출간한 그의 콩트집 「대한민국 박대리」도 현재 후속편이 PC통신으로 연재되고 있다. 「왜곡되고 일그러진 세상 엿보기」라는 평을 들었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도 우리시대 보통사람들을 한없이 왜소하게 만들어 결국 가상공간에서의 역습을 꿈꾸게 만드는 부패한 돈과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녹아 있다.
해직의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다수 직장인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작품. 신출내기 여기자와 탈주범을 잡으려는 형사의 집요한 추적장면도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