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년만 지나면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 이 밀레니엄은 단순히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넘어 자본중심의 산업사회가 마감되고 정보중심의 고도 정보사회가 개막되는 보다 중차대한 뜻을 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새 밀레니엄시대에 대비하자는, 나아가서는 정보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특히 21세기 최고의 유망산업인 정보통신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연구투자와 기술개발은 금세기 마지막 남은 한해를 금싸라기처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금세기 최고의 석학이자 현대경영이론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 교수는 최근의 한 기고문에서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할 시기』라며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했다. 드러커는 금세기에 유행했던 경영이론들은 새로운 정보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70년 전 세계경제 대공황 때 완성된 이론들이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기존 기업중심의 산업사회를 급속하게 해체해가고 있으며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고, 이어서 그것을 유지시키고 진화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정보통신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정보통신은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에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게 될 부문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21세기 고도 정보사회를 이끌 정보통신분야에는 전자·반도체와 같은 기존 하드웨어기술을 비롯하여 컴퓨팅·네트워킹·무선·사용자인터페이스·암호인증·표준화·국제어 등 새로운 소프트웨어기술이 필수적이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들 기술은 개별적으로 또는 일부 융합된 형태로 나타나 정보통신산업이라는 독자적인 산업유형을 형성했지만 21세기에는 모든 것이 상호보완적 또는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광범위한 정보사회의 형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 형태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전자상거래시스템이다.
정보사회의 유기적 통합시스템인 전자상거래의 대두는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전자상거래의 영문명칭이 전자무역거래나 통상의 의미에 가까운 「Electronic-Comme
rce」에서 최근 광범위한 거래, 일거리 등을 뜻하는 「Electronic Business」로 바뀌어 불리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여기에는 정보시대의 정치·행정·경제·교육·문화·의료 등 모든 분야의 행위가 포함된다. 전자상거래를 통해서는 정보사회의 기반인 지식(Knowledge)이 이동한다.
지식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21세기 고도 정보사회에서는 고급지식을 요하는 지식노동자의 양성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사회적 과업으로 대두될 전망이다. 지식노동자들의 양성은 지식이 노동·자본·토지 등의 전통적인 생산요소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계경제는 양질의 지식노동자가 기업이나 기관 등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로 이행중에 있다.
인터넷과 같은 네트워크시스템의 확대보급도 빼놓을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인터넷의 확장은 특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적용되는 환경에서 남녀의 역할이나 위치의 변화, 사회적 구성원의 연령, 문화와 경제중심지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사고(思考) 중심의 전략적 전환도 중요한 문제다. 이를테면 20세기 후반 전세계의 관심은 기존 산업사회를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정보화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여기서 사고의 패턴은 산업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채 정보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처음부터 정보사회에 발을 디딘 채 사고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정보사회 테두리에서 사고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불과 90년대 초반만 해도 컴퓨터로 처리된 정보는 모두 다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정보저장고에 쌓이는 데이터베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부터는 생성해서 보관해야 할 데이터가 필요한 정보인지 불필요한 정보인지, 또는 고급정보인지 저급정보인지를 가리는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들어 데이터웨어하우스(DW:DataWarehouse) 또는 데이터마이닝(DM:DataMining)과 같은 기술이나 기법들이 급속하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적어도 DW나 DM은 생성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급급한 차원이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고안된 한차원 높은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고중심의 변화는 또한 관련 법제도나 표준화 부문에서도 골고루 적용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사회 시각에서 만들어진 법제도로 어떻게 21세기 정보사회를 정의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한편 드러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5개 항목으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경영은 기업에 국한돼서는 안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21세기 정보시대에 가장 두드러지게 발전할 분야로는 행정·교육·건강·국제문제 등이다. 둘째 조직구성에 왕도는 없다. 90년대 초반에 열풍이 불었던 중앙집중식이냐, 분산관리냐 하는 것도 정보통신의 발달로 무의미해졌다. 셋째 유연한 인간·조직관리, 본격적인 외부조달(Outsourcing) 개념이 도입되면서 조직원간 또는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간 관계는 상하가 아닌 협력자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 넷째 산업간 벽이 무너진다. 기술발달은 플라스틱과 유리가 철강제품을 대신케 함으로써 전통적인 산업분류 개념을 깨뜨렸다. 현재는 우리의 고객이 아니지만 미래에는 언제든지 고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가 왔다. 다섯째 기업 외부환경을 주시해야 한다. 정보시대에는 조직의 효율적 운영보다는 기업발전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외부환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마케팅 역시 「무엇을 팔 것인가」 하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보다는 「누가 우리의 고객인가」라는 고객중심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서현진기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