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글로벌화 10대 과제> 그린라운드

 「그린라운드(Green Round)」가 국제무역질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다가올 새 밀레니엄시대는 환경의 헤게모니를 잡는 국가가 세계 경제의 중심부에 설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1백14개국 정상이 참가한 가운데 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환경정상회담」(UN환경개발회의)에서 「리우선언」이 채택된 이후 지구촌에 그린라운드의 태동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환경보호」라는 미명 아래 환경을 국제무역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규제하기 위해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있다. WTO의 가장 큰 대의명분은 완전한 세계무역의 자유화이며 ISO 역시 지구촌 교역을 원활히 하기 위한 세계표준의 달성이지만 그 이면엔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숨어있다.

 WTO는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 강대국들 주도로 국제적인 환경문제를 무역과 연계시키려는 논의를 급진전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그린라운드가 본격 태동하기까지는 적어도 4∼5년은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린라운드가 21세기 새로운 국제 무역질서 중에서 가장 먼저 출범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ISO는 더욱 긴박하다. 전문위원회인 TC 207을 중심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환경친화적인 경영시스템 구축에 대한 포괄적 규격을 제정하고 각종 환경관련 세계표준을 하나씩 만들어내고 있다. 이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기업경영은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한마디로 환경이 기업경영의 본질적인 요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환경문제에 둔감한 기업은 앞으로 치명적인 유무형의 손실을 입게 될 전망이다. 법적인 과징금과 피해보상금은 물론 오염복구비와 기업활동 규제, 신규사업 제한이 뒤따르며 시장에서는 기업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돼 매출감소와 함께 잠재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현재 너나할 것 없이 환경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환경폐기물의 재활용(리사이클링)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코닥은 필름제조에 쓰이는 유기용제·염화불화탄소(CFC) 사용량을 줄이고 용제를 회수, 재활용하거나 폐카메라를 거둬들여 부품을 재사용하고 있다. 폴크스바겐·BMW 같은 유수의 자동차메이커들은 폐기물 감축을 위해 70∼75%의 리사이클링을 시도하고 있으며 도요타·소니·마쓰시타 등 일본기업들의 경우 총 투자비의 10% 이상을 환경부문에 쏟아붓고 있다.

 전자·정보통신 업종이라고 해서 환경문제를 비껴갈 수는 없다. 21세기 초반에 출범할 그린라운드에서는 단순한 환경폐기물을 적정 수준 이하로 규제하는 단순 차원이 아니라 광의의 환경, 즉 환경을 생각하고 기업의 모든 활동이 환경친화적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총체적으로 규제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환경이 이렇게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 우리나라는 현재 환경문제에 관한 한 걸음마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기업 집단을 중심으로 그럴싸한 환경경영선언을 선포하는 등 겉으로는 그린라운드의 태동에 대응하고 있지만 환경투자비가 총 투자비의 2%에도 못미칠 정도로 열악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은 기업환경주의를 자원절약과 재활용이라는 사회적 책임의 문제뿐만 아니라 비용절감을 통한 이윤창출의 기회로 역이용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환경투자를 그저 단순한 비용쯤으로 인식하는 수준』이라며 『이제부터라도 긴 안목을 가지고 환경비용을 미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는 발상의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수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기업들로선 환경친화적 경영이 바이어들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사항으로 떠오르기 전에 미리 과감한 환경투자를 실시함으로써 그린라운드에 철저한 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경영자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환경문제는 환경담당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조직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업의 방향 설정, 자원의 배분, 종업원에 대한 동기유발, 부서간 이해조정 등을 총괄하는 최고경영자의 환경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의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업내에 환경친화적인 신기업문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의 모든 조직과 구성원의 친환경적인 마인드를 공유하기 위해 조직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 기회를 부여하고 환경친화적인 경영체제 및 환경감시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통적인 경영형태로는 기업내의 모든 조직이 환경친화적으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그린라운드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과 환경문제가 규제와 단속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깊게 인식하고 소비자들의 친환경적인 소비형태를 유도하고 기업의 환경문제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