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카드 제조업체인 B사의 김모 사장은 얼마전 미국의 마이크로웨이브지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최근 들어 멀티미디어카드 시장에 신규업체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채산성이 악화돼 사업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던 김 사장으로서는 마이크로웨이브지에 나온 「21세기는 네트워크시대며 이와 관련된 시장은 2010년까지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기사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기획실에 사업분석을 지시했고 한 달 후 그에게 전달된 사업계획서에는 「인터넷 콘텐츠 및 홈쇼핑」이 진출 가능한 유망사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 사장은 신규사업 프로젝트를 「빅21」로 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업의 핵심사항인 비싼 회선사용료와 대금결제 문제 등이 장애로 등장해 한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B사는 정부와 금융권에 인터넷시대에 걸맞는 현실적인 대안을 요구했지만 이들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현재의 법적용 이외의 대안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는 산업환경에 관련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등 선진국들도 산업환경 변화에 따른 관련법의 제·개정 등에 애를 먹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늑장을 부리지는 않는다.
21세기는 네트워크시대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네트워크 활성화와 관련된 기본적인 법조차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그나마 이미 가지고 있는 관련법 개정도 이해관계에 얽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행정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하기로 약속한 총 1만1천여건의 각종 규제 가운데 지난 한 해 동안 48%에 해당하는 5천3백여건이 철폐되고 2천4백여건은 규제가 완화됐지만 아직도 정부의 행정규제 개혁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얼마전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네트, 비즈니스의 신세계」란 주제로 전시회 및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인터넷은 전화나 우편에 이은 「또 하나의 별정통신」이 아니라 다른 모든 통신수단을 포괄하는 대표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떠 오르고 있다』면서 『그러나 인터넷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관련법규의 정비와 인프라 구축, 특히 네트워크의 고속화·안정화 등 다각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인터넷 관련 법규의 정비문제는 이미 전세계적인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지난해 통신품위법(CDA)이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듯이 기존의 법체계로 인터넷사회를 관리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은 이제 「기술적 발전단계」에서 「문화적 발전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와 관련된 법체계를 하루빨리 정리하지 않고서는 정보시대에도 외국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부의 탁상행정식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정부의 기업 구제금융의 난맥상을 들 수 있다.
시대변화에 따른 현장행정 없이는 국가경쟁력이나 국민생활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IMF 이후 정부는 중소기업의 부도방지를 위해 수십조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금융기관에서는 부동산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부실채권을 우려해 이들 중소기업에게 IMF 이전에 비해 2배 이상의 담보를 요구함으로써 사실상 중소기업의 대출을 봉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동산 위주로 여신이 이뤄지는 현재의 금융관행을 특허·신기술·영업권 등 지적재산을 담보로 하는 여신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부가 집중 육성하기로 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은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정보와 영상산업을 중심으로 한 신지식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 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정부지원과 관련 행정규제의 과감한 개혁을 약속했다.
정부의 신지식산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지난해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상의 선진적 제도들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현재의 민·관 합동 규제개혁위원회를 더욱 강력한 개혁 추진기구로 개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봉영기자 by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