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빅딜" 이후 전망

반도체사업 절대 포기불가, 경영주체 실사기관인 아서 D 리틀(ADL)의 평가결과 불복, ADL사 제소결정 등으로 벼랑끝 협상을 벌이며 반도체사업 고수를 주장했던 LG그룹은 결국 안팎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대로의 합병에 승복했다.

LG그룹이 지금까지의 완강한 입장에서 갑자기 빅딜 수용으로 자세를 바꾼 것은 신규여신 중단 등 현실적인 금융제재조치가 현실화된데다 `항명`으로 인해 가중될 그룹 전체에 대한 `괘씸죄` 적용의 부담이 엄청났기 때문리나는 분석이다.

이번 LG의 빅딜 수용으로 국내 반도체 산업은 현재 메모리시장 1위인 삼성전자와 현대-LG합병사의 2사체제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될 전망이다.

더욱이 국내 반도체산업이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할 경우 이번 합병추진이 국내외 반도체업계에 미칠 효과는 예상외로 엄청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빅딜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빅딜 자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나 평가가 전제되지 않고 단순한 정치논리로 빅딜을 강요했다는 것은 향후 통합사의 경영실적에 따라 두고두고 정치권의 부담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어쨌거나 국내 대기업 사업구조조정의 핵심이었던 반도체 빅딜이 성사됨에 따라 향후 세계 D램시장의 판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D램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합병이후 현대-LG합병사의 반도체 생산능력이 어느 수준이 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선 단술 산술적으로만 계산한다면 합병사의 생산능력은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D램업체가 탄생할 것은 확실하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현재 생산능력은 주력 제품인 64MD램의 경우 각각 월 7백만~8백만개 수준으로 추정된다. 양사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현재 월 1천 5백만개의 생산능력을 가진 삼성전자와 거의 유사한 수준으로 단번에 뛰어오르게 된다.

또한 16MD램의 경우 오히려 삼성전자보다 합병사의 생산능력이 훨씬 앞서게 될 것으로 보여 시장 장악력면에서 합병사가 우위에 설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때문에 합병작업이 마무리된 이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의 1, 2위 자리를 모두 국내업체들이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이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엄청나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병으로 가져올 또 하나의 기대감은 양사가 동일 계열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LG반도체의 경우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의 가장 유력한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다이렉트 램버스 D램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현대전자는 현재의 시장 주력품인 싱크로너스 D램과 차세대 제품인 1백28MD 및 2백56MD램의 양산기술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병 결정으로 양사 모두 엄청난 규모의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합병사는 대폭적인 비용절감을 통해 반도체 시장에서 원가경쟁력이 높아지지 않겠는냐는 기대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D램산업이 예전의 장치산업 성격에서 기술주도적인 산업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아래 조단위 투자를 필요로 하는 차세대 기술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번 합병의 최대성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메모리반도체산업이 공정에 의해 경쟁력 우열이 좌우된다는 현실을 고려할 경우 상당히 많은 어려움도 돌출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다른 장비와 공정을 사용하는 양사의 생산라인을 정비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사의 생산공정과 장비간 호환성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에 합병에 따르는 부대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