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논란을 빚어왔던 반도체 빅딜이 LG반도체가 현대전자에 모든 반도체 사업권을 이관하는 방향으로 결정됨에 따라 향후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시장도 급격한 구조조정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대와 LG의 반도체 사업 부문 합병으로 반도체 장비 및 재료시장의 대형 고객 하나가 사라지게 됐고 이로 인해 향후 국내 전체 장비·재료시장 규모는 현재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LG그룹 반도체 관련 계열사
그동안 LG반도체의 기본 수요를 바탕으로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사업을 추진해온 LG실트론·LG화학·LG마이크론 등 LG그룹내 계열 회사들은 이번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포기 결정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들 LG그룹 계열 회사 대부분은 생산제품 중 70% 이상을 LG반도체에 공급해 왔으며 나머지 물량은 해외시장에 수출하는 쪽으로 반도체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기술 보안 문제가 중요시되는 반도체 사업 특성상 향후 현대전자가 LG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핵심 장비 및 재료를 계속 공급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G반도체의 전체 웨이퍼 물량 중 80% 이상을 차지해온 LG실트론의 경우 이번 합병으로 국내에서 웨이퍼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수요 기반 자체가 사라지게 됐다. 더욱이 이 회사는 최근 구미 신공장에 총 1백억원을 투자, 연간 10만장 규모의 에피택셜 웨이퍼 전용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최근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데 이어 차세대 웨이퍼 제품인 SOI(Silicon On Insulator) 웨이퍼 개발 및 생산에도 이미 막대한 재원을 투입한 상황이어서 향후 사업 진로 결정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화학 분야 진출을 위해 반도체 재료시장에 뛰어든 LG화학은 64MD램 반도체 제조용 에폭시몰딩컴파운드(EMC)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고 지난해에는 미국 시플리社와 합작으로 포토레지스트(PR) 전문 자회사까지 설립했으나 이번 합병으로 지속적인 사업 추진 자체가 불투명하게 됐다.
또한 리드프레임 제조업체인 LG마이크론도 해외 수출시장에서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지 않는 한 자체 개발한 리드온칩(LOC) 및 BLP(Bottom Leaded Package) 타입의 첨단 리드프레임 제조 기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며 지난해부터 반도체용 레이저 마킹 장비 사업을 추진해온 LG산전도 비슷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 중소 반도체 장비·재료업체
LG그룹의 반도체 사업 포기 소식을 접한 장비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LG와 현대의 반도체 부문 합병은 장비 및 재료업계로선 호재라기보다 악재에 가깝다』고 전제하며 『합병에 따른 국내 반도체 장비시장의 대폭적인 감소로 관련 중소업체의 3분의1 이상이 도산할 지도 모른다』며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로 빅딜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경 국내 장비·재료업체들은 공동 명의의 「반도체 빅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계획을 추진할 정도로 이번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해 왔다.
두 회사가 공식적인 합병을 발표하고 곧바로 구체적인 통합 작업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신규 설비 투자나 장비 발주는 고사하고 LG로부터 최근 발주받은 장비 물량도 제품 납기가 연기되거나 아예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장비업계의 전망이다.
특히 LG반도체의 경우 캐논 스테퍼 및 히타치 계열 테스터 장비 등 삼성이나 현대측 설비와 전혀 호환성 없는 장비들을 많이 사용해 왔으며 이를 위해 해당 분야 전문 중소업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에 따라 그동안 LG반도체만을 거래해온 장비 및 재료업체들은 이번 합병으로 국내 반도체시장에서 아예 도태되는 최악의 경영 위기 상황을 맞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부정적인 시각과 달리 현대전자 협력업체 중 상당수는 이번 합병이 새로운 시장 확대의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번 합병은 국내 장비 및 재료 산업의 전체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 경쟁력 있는 업체만 살아 남아 현재의 과열경쟁 상황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장비 개발과 신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