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하향곡선을 그리던 셀스루(판매용 비디오)시장이 점차 정상궤도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돼 판매용 비디오시장이 고사위기에 처한 듯 보였지만 최근에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비디오유통 전문업체 성일미디어의 김태양 사장(35)은 머지 않아 판매용 비디오시장이 개화기를 맞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업계에서 흔히 「셀스루(Sell Thru)」로 불리는 판매용 비디오는 대여용과 달리 책이나 음반처럼 가정에서 소장하는 비디오.
성일미디어는 지난해 7월초 (주)코오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독립업체로 분리된 판매용 비디오 유통전문업체다. 코오롱 영상사업단을 주축으로 비디오산업에 뛰어들었던 (주)코오롱은 한동안 아웃소싱을 맡겼던 중소유통업체가 부도로 쓰러지면서 그 영업조직을 인수해 KVC라는 비디오 유통 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다 IMF로 영상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코오롱이 그룹 차원에서 비디오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고, 영상사업단 일부 직원들과 KVC가 합쳐져 성일미디어로 재출범하게 된 것. 하지만 이처럼 대기업의 영상사업 실패에 따른 고육지책으로 출발하게 된 이 회사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6개월만에 판매용 비디오시장의 빅3 업체로 올라섰다.
김태양 사장이 영상업계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인 분사(分社)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89년 첫 직장으로 (주)코오롱에 입사한 후 공테이프 영업부터 시작한 김 사장은 지난 10년간 줄곧 영상산업관련 부서에서만 한우물을 팠다.
코오롱그룹이 케이블TV사업에 진출한 95년엔 계열사 A&C코오롱으로 옮겨가 2년여 동안 방송프로그램 해외판권 구매를 담당했다. 다시 친정집인 (주)코오롱 영상사업단을 거쳐 성일미디어 사장직을 맡기 전까지는 KVC의 기획팀장으로 일했다.
『사실 처음 독립할 땐 막막했습니다. 워낙 악천후였으니까요. 하지만 더이상 나빠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더군요. 거품이 다 빠지고 경기가 이미 바닥을 쳤으니 회복기가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KVC로부터 인수한 4백개 거래처를 정리해 1백20개선으로 줄이는 과감한 군살빼기부터 했죠.』
김 사장은 거래처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도 58명에서 13명으로 대폭 줄였다. 코오롱 영상사업단 시절부터 함께 일했던 남현호 기획실장을 중심으로 소수정예부대를 구성하면서 회사는 빠르게 틀을 잡아갔다. 영업의 무게중심을 백화점에서 할인점으로 옮긴 것도 매출회복에 도움이 됐다.
『백화점 중에는 단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비디오매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죠. 사실 비디오는 단가가 낮기 때문에 매장면적당 매출 면에서 매력적인 상품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월마트나 그랜드마트 같은 할인점에선 비디오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계 할인점은 메이저 비디오업체들과의 오랜 파트너십을 통해 뛰어난 마케팅 노하우를 갖고 있죠.』
한편 우후죽순 난립했던 군소도매상들이 IMF 이후 잇따라 문을 닫게 되면서 오히려 남아 있는 유통업체들은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더구나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고가의 방문판매용 비디오보다 매장에서 낱개로 구입할 수 있는 판매용 비디오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상황은 눈에 띄게 반전되기 시작했다.
『저는 비디오 유통을 노량진시장에서 생선팔기라고 생각합니다. 물이 좋은 생선은 금방 팔리죠. 하지만 싱싱하지 않으면 값이 좀 싸도 손님은 그냥 지나칩니다. 싱싱한 비디오만 파는 것, 그것이 올해 저희 성일미디어의 전략입니다.』
김 사장은 올해 PC통신과 인터넷을 이용한 신유통망 개척에도 나설 계획이다. 치밀한 계획없이 영상산업에 뛰어든 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누적적자로 전전긍긍하는 대기업들에 비디오산업은 역시 작지만 알찬 중소업체들의 텃밭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는 것이 성일미디어 직원들의 목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