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e북" 시대 열린다

 「아톰이 아니라 비트로 셰익스피어를 읽는다.」

 요즘 세계 출판계의 눈이 전자책의 선전문구에 쏠려 있다. 전자책이란 흔히 e북(eBook)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책. PDF 같은 파일포맷을 이용하는 온라인 서적도 아니고 PC화면으로 읽는 CD롬 서적도 아니다. 전자책은 PDA처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책 모양의 전자기기. 크기는 서점에 진열된 문고판 정도에, 무게는 종이책보다 조금 무거운 1파운드 가량 나간다. 작은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어 버튼을 누르면 책장이 넘어간다.

 언뜻 보면 초를 바른 나무판을 묶었다는 로마시대의 책이나 진흙 위에 글씨를 썼던 바빌로니아시대의 클레이 타블렛(Clay Tablet)을 연상시킨다. 이 작은 전자책 한 권이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출판된 경제서적부터 베스트셀러 작가의 추리물까지 약 4천페이지의 콘텐츠를 담는다. 종이책 10권을 한꺼번에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는 셈.

 최초의 전자책은 지난해 10월말 미국 최대의 서적체인인 반스 앤드 노블스(Barnes&Nobles)의 진열대에 등장한 「로켓 e북(Rocket eBook)」. 실리콘밸리 팰러앨토 소재의 벤처업체 누보미디어가 내놓은 이 전자책은 단숨에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뒤이어 소프트북 프레스가 좀더 무겁고 호사스러운 디자인의 「소프트북(Softbook)」을 출시했고, 리브리어스(Librius)도 「밀레니엄 리더」로 전자책시장에 뛰어들었다. 곧 「에브리북」이라는 이름의 전자책도 가세할 예정이다.

 전자책의 등장은 구텐베르크 이후 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혁명적이다. 하지만 당장은 종이책을 위협할 만큼 독자들에게 호감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 아직은 「테크노필스(technophiles)」라 불리는 첨단기술 마니아들의 값비싼 기호품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전자책의 보급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비싼 가격을 지적한다. 현재 팔리는 전자책은 밀레니엄 리더가 2백달러, 소프트북 2백99달러, 로켓e북의 경우 4백99달러를 호가한다. 게다가 전자책 포맷을 지원하는 콘텐츠를 온라인서점에서 다운로드하려면 보통 책 한 권당 20달러씩을 지불해야 한다. 출판업계 전문가들은 전자책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3∼4달러로 내려가야만 대중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종이책처럼 읽기가 편하지 않다는 것도 문제. 로켓e북의 경우 해상도가 1백5dpi로 보통 72dpi인 데스크톱PC 화면보다는 낫지만 30분 이상 쳐다보면 서서히 눈의 피로가 오기 시작한다는 게 독자들의 불평이다.

 게다가 책을 바꿔 읽을 때마다 받침대에 전자책을 고정시키고 시리얼 단자를 이용해 PC와 연결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소프트북의 경우 모뎀을 내장하고 있긴 하지만 온라인서점에 들어가 다운로드하는 과정이 번거로운 것은 마찬가지.

 온라인서점에 베스트셀러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도 전자책 구입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 존 그리셤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신작을 미리 주문할 수 있다면 독자들은 훨씬 호감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5년이면 길거리에서 쉽게 전자책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낙관론자들의 전망이다. 전자책은 출판업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이기 때문. 무엇보다 전자책은 출판업계의 재고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솔루션이다. 오디오 온 디맨드(AOD)업체들에 휴대용 MP3플레이어가 희소식이듯 온라인서점들도 전자책의 등장에 환호하고 있다. 발빠른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미 소프트북과 손잡고 전자책의 표준화를 위해 발을 벗고 나섰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2002년 전자책의 시장규모는 약 25억달러 정도. 라디오가 TV를 대체하지 않았고, 영화가 비디오와 공존하는 것처럼 전자책도 종이책시대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가정의 서가에 전자책이 꼽혀 있는 풍경을 보게 될 날은 머지 않았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