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인터넷이 종이를 대체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일반적인 추세다. 다양한 그룹웨어 소프트웨어는 종이 없이도 사내결재를 가능케 만들고 있으며 인터넷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자료를 컴퓨터 모니터에 제공한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우편 활용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 체신청의 매출액 감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종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 모를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종이의 치명적인 결점인 「업데이트 불가능」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게 되어 종이 한 장에 전세계 의회도서관의 책들을 모두 담아 낼 수 있다면, 또는 종이 한 장으로 다양한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게 된다면 종이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역으로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전자잉크. 전자잉크는 종이 한 장에 컴퓨터와 인터넷기능을 모두 제공할 수 있고 특히 간편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활용할 수 있어 미래 정보기술 분야를 선도할 첨단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가진 전자잉크를 연구중인 곳은 미 벤처기업 E잉크와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산하 벨연구소. E잉크는 전기장에 노출되면 색이 변하는 전자잉크를 개발 중에 있고 벨연구소도 박테리아를 활용한 전자잉크를 연구하고 있다.
E잉크는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조셉 제콥슨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추진하고 있는 전자잉크 기술을 라이선스, 전자잉크 개발을 현재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잉크가 개발하고 있는 전자잉크는 미립자들이 전자기적인 충격으로 운동성을 갖게 된다는 전기영동학(電氣泳動學)에 기반을 두고 있다.
E잉크의 전자잉크는 미세한 미립자로 구성되며 이들이 모여 하나의 문자를 형성하게 된다. E잉크의 핵심 기술은 전자잉크를 일반 종이나 플라스틱, 심지어는 의류에 박막으로 입혀 전자잉크 속에 있는 미립자를 전자기적인 방법으로 데이터화해 재배열하는 것이다.
직경이 2백50㎛ 정도인 전자잉크의 미립자는 다양한 염료를 입힌 후 음극 및 양극으로 전기적인 충격을 가하게 되면 같은 색의 염료들끼리 몰리게 되어 문자를 조합하게 된다.
또한 전자잉크의 미립자는 전류를 계속 흘려주지 않아도 수주일간 문자 및 영상을 그대로 보존하는 특성이 있어 에너지절약기능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전자잉크는 특히 간단한 연결장치를 통해 컴퓨터나 인터넷과 연결, 전자종이에 기록된 내용을 재배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자잉크는 전자서적·전자신문·전자광고 등 업데이트가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E잉크는 전자잉크의 데이터 전송기술 연구가 진척될 경우 TV와 라디오처럼 무선으로 전자잉크를 재배열할 수 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E잉크는 자사가 개발중인 전자잉크가 현재 3백×4백dpi 정도의 해상도를 지원한다고 밝히고 앞으로 이보다 더 높은 해상도를 지원키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자잉크는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데이터 전달속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앞으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잉크는 전자잉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재해 있지만 앞으로 5, 6년 안에 상용화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벨연구소는 자연상태로 살아있는 변종 박테리아에 전기적으로 충격을 가할 경우 변색되는 성질을 응용, 이를 통한 전자잉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벨연구소는 바다에서 번식하고 있는 할로박테리움 샐리너리움이라는 박테리아의 세포막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오호돕신(Bacteriorhodopsin)을 이용, 전자잉크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박테리오호돕신은 외부적인 전기장에 반응, 색을 변경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평상시의 박테리오호돕신은 보라색을 띠게 되나 강한 전기장에서는 진노랑으로 변한다.
벨연구소는 이들 박테리아를 종이·플라스틱 등의 물질에 박막으로 층을 입힌 뒤 전자기적인 방법을 활용한 결과 2백 마이크로초 속도로 문자와 영상 등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자잉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 4천V 이상의 높은 전압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벨연구소는 낮은 전압으로도 박테리아 상태를 변경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도 E잉크의 전자잉크와 기능과 특징이 유사한 「자이리콘(Gyricon)」이라는 전자종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제록스의 전자종이는 E잉크의 전자잉크와 비슷한 전기적인 방법으로 문자 및 영상을 표시하는 기술이다.
전자잉크가 상업화되기 위해서는 전기적인 안정성 및 확장성 등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전자잉크가 앞으로 본격적으로 개발, 상용화될 경우 인류가 2천년 가까이 사용해왔던 종이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정혁준기자 hjjo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