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도 삼성전기 사장은 짬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로 자동차 부품사업 처리가 현안으로 다가왔고 연일 떨어지는 환율 대비책 마련을 위해서도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영위원으로서 그룹의 일도 그에게는 적지 않은 몫이다. 특히 이 사장은 지난해 외환위기로 최악의 경영환경에 처한 가운데서도 삼성전기 매출을 2조5천억원으로 올려놓았다. 남보다 한걸음 앞선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가 빛을 본 것이다. 그가 7인의 그룹 운영위원으로 위촉된 것을 보면 그룹에서도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을 진작부터 알아본 것 같다. 부품사업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사장은 『부품·소재업체를 맡아 전자산업의 경쟁력 확보에 일조해온 데 대해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앞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하는 등 내실을 다져 나감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사장은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혹시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작업이 중도에 어설프게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중도 포기해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고통스럽지만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1세기에 대비해 정보화분야 중에서도 인터넷에 관심을 두고 이를 부품사업에 적용하기 위한 아이디어 발굴에 여념이 없다.
대담:박재성 부품산업부장
-자동차 빅딜과 극심한 환율변동 등으로 연초부터 무척 바쁘다고 들었는데 자리를 마련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지난해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삼성전기는 어떠했는지요.
▲지난해는 IMF를 맞아 기업들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지난해 삼성전기는 매출이 2조5천억원에 이르러, 97년 1조8천억원보다 무려 40%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특히 관계사 매출비중은 30%대로 낮추는 반면 해외 신규 거래처 개척에 힘입어 직수출 비중을 6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등 국내외 거래처를 다변화시켰습니다.
재무구조 면에서도 자산재평가 및 유상증자, 현금흐름 개선 등을 통해 은행차입금 2천4백억원을 상환해 2백80%대의 부채비율을 1백80%대로 낮추는 등 견실한 재무구조를 다지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같은 성과는 2000년 월드톱 부품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품목별로는 튜너·DY·FBT 등 영상부품과 정밀모터·SMPS 등 기존의 주력제품 매출이 견조한 신장세를 보였고 정보통신산업의 신장세에 힘입어 MLB·MLCC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성장세가 돋보였습니다. 또 VCO·TCXO 등 이동통신부품과 광부품 등의 신규사업들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 경제전망이 그렇게 밝지는 않습니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데다 남미와 러시아 경제상황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올해 전자부품산업의 경기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세계적인 경기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기업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격하락과 불안정한 환율 등이 여전히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디지털 이동전화·노트북PC·디지털카메라 등의 보급촉진으로 고수익 고성장을 보장하는 첨단부품 개발기회가 넓어지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올해 전자부품시장은 응용기기의 전반적인 성장에 힘입어 10% 이상 성장하는 부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폭적인 가격하락으로 전체적으로는 3∼5%의 소폭 성장에 머물 것으로 보입니다.
지역별로도 미주지역은 디지털TV 등 신시장 출현으로 디지털부품의 호조가 예상되고 유럽은 와이드TV의 신장으로 대형 디스플레이 부품시장이 호전될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등 아시아권은 여전히 부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거의 모든 기업들이 당분간은 생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올해 경영의 초점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위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 확보」를 슬로건으로 정하고 세가지 정도에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
우선 사업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사업구조를 다질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모니터용 DY의 경우 14인치 중심에서 17인치·19인치·21인치 등으로 고도화해 부가가치를 높여 경쟁업체의 추격을 물리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신제품 개발에도 눈을 돌릴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원가절감 노력을 통한 경쟁력 확보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월드톱 생산라인 만들기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했는데 올해는 제조리드타임과 생산공정 등을 50% 가량 줄이는 한편 설계·구매·생산을 한팀으로 해 설계단계에서 부품구매를 줄이는 방법을 강구해 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사업장을 연결하는 정보인프라를 구축할 생각입니다.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 선진국형 기업자원관리시스템인 SAP R/3를 구축했는데 올해는 5개의 해외공장과 30개의 영업거점망을 총망라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을 완료할 생각입니다.
-삼성전기는 이 사장께서 일찌감치 구조조정을 추진,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하면 구조조정도 할 만큼 했다 싶은데요.
▲흔히 구조조정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구조조정은 기업이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 신진대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입니다.
-최근 일본 부품업체들을 보면 소위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삼은 듯합니다. 기업 컬러에 맞는 주력제품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품목은 과감히 버리고, 또 선택한 품목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삼성전기도 종합 부품업체로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업품목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도 가스경보기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대대적으로 품목조정을 단행했습니다. 올해도 10%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품목 중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품목들은 조기에 퇴출시킬 방침입니다. 또 생산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분사화를 통해 경쟁력을 살려 나갈 수 있는 품목은 그렇게 추진할 계획입니다.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품목은 인터넷과 관련한 부품과 이동통신부품·광부품 등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품목간에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제품개발이나 생산·영업 등 측면에서 시너지효과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내수가 위축되면서 기업들이 수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환율이 1천1백원대로 진입하면서 수출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로화 출범에 따른 유럽현지 경영환경과 수출환경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직수출 비중이 매출의 60%에 이르고 로컬수출까지 합치면 매출의 85%를 수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격한 환율변동은 기업경영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경쟁력이 약해진 세트업체가 가격인하를 요구함으로써 환율부담을 부품업체로 전가시킬 가능성이 커 어느 때보다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삼성전기는 경영체질 개선과 4개국에 걸쳐 5개 해외공장을 운영함으로써 환율변화에 따른 위험을 사전에 분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규모는 4억달러 정도인데 이중 유로화로 통용되는 것은 5% 미만에 그쳐 단기적으로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유로화가 세계의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고 전산 및 회계 관련 준비를 완료하는 등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습니다.
-사업 구조조정으로 조직분위기가 달라지면서 기존의 조직관리체계도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으로 보는데요.
▲기업은 좋은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또한 확보된 인재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만 조직이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인사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꿀 생각입니다. 하나의 추세이긴 하지만 연공서열제에서 벗어나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을 수 있도록 성과급제로 전환해 나갈 방침입니다. 또한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조직분위기를 만드는 데 주력해 나갈 생각입니다.
-부품의 질이 세트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고 보면 부품업체로서 삼성전기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책임부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5년 동안 삼성전기를 경영해오면서 최고경영자로서 안타까웠던 점은 없었는지요.
▲대기업으로서 위상과 장점을 살려 우리나라 전자부품산업을 이끌어 나가는 데 일조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회사가 갖고 있는 가치만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주주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주식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또 올해는 새로운 천년을 앞둔 마지막 해이기 때문에 신경영 선포 이후 21세기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해 쏟아온 노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현재 21세기 비전달성을 위한 「1천일 작전」과 IMF 위기 속에서 수립했던 「포스트 5백일 작전」을 통해 21세기를 차분하게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정리=원철린기자 cr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