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술쪽이 좋으세요, 아니면 경영쪽이 좋으세요』 또는 『기술자와 경영자 중 어느 쪽이 적성에 맞으세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필자는 운좋게도 참으로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이면서도 동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머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했었고,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한 다음에는 벤처기업을 경영함과 동시에 미국에서 경영공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물론 바쁘게 살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참으로 값진 경험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흔히 기술과 경영은 과학과 예술 또는 논리와 감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즉 기술은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분야이며, 경영은 전체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판단력 및 실행능력 등의 감각이 요구되는 분야다. 따라서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술자가 적성에 맞고,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기술자보다는 경영자가 더 적합하다는 일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이분법은 틀린 구석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처음 기술을 배울 때는 과학적인 지식 및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필수적이다. 사실에 근거하여 규칙을 세우고 이러한 규칙을 논리적으로 조합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간단할 경우에는 정답이 단 하나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해지고 난이도가 증가함에 따라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기술자의 몫이 된다. 이 정도가 되면 더 이상 과학적으로 접근하기는 힘들며, 기술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여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소프트웨어의 경우를 예로 들면, 간단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한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복잡해질수록 프로그래머마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게 마련이며, 만들어지는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래머의 실력에 따라 엄청난 성능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즉 기술은 과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수준이 높아질수록 예술적인 영역에 근접하게 되는 것이다.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을 배우면서 절실하게 깨달았던 점은 경영에서도 아주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면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한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분석도구를 개발하고 계속 상황변화를 파악하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면이 없이 경영자의 직관에만 의존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고, 실패한 다음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게 된다. 즉 경영도 기술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근간으로 한 분야이며, 과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부터는 예술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쪽이 좋으세요, 아니면 경영쪽이 좋으세요』라는 질문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는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며 따라서 기술에서의 과학적인 영역도 좋아하지만 경영에서의 과학적인 영역 역시 좋아합니다. 기술과 경영에서의 예술적인 영역도 좋아하느냐구요? 한 번 도전해볼 만한 분야가 아닐까요.』
<안철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