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기는 온갖 공해물질로 오염돼 있지만 그 중에는 눈에 결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문명의 괴물이 숨어 있다. 바로 전자파 공해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휴대폰과 무선호출기가 널리 보급돼 더 더욱 전자파 공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과연 이 「전기 스모그」는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전기는 전선을 타고 흐르기도 하지만 공기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채우면서 퍼져나가기도 한다. 우리가 라디오나 TV를 볼 수 있는 것도 다 무선 전파 덕분이다. 그런데 이런 무선 전자파는 고압 송전선 부근에서는 아주 강력하게 방사되며, 또한 모든 종류의 전기·전자 제품에서도 방출된다.
20세기 들어서 전 세계에는 온갖 종류의 전자파가 급속하게 증가해 오늘날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할 경우 지구는 태양계에서 가장 밝은 천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정도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전자파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초고압 송전선 부근에 형광등을 가져가면 달이 없는 깜깜한 밤에도 형광등이 희미하게 빛난다.
예전에 미국 뉴욕에서는 주민들이 이러한 방법으로 강력한 전자파의 존재를 보여주면서 당국의 대책을 촉구하는 시위를 한 적도 있었다.
요즘 대부분의 가정마다 이용하고 있는 전자레인지는 일종의 전자파 도가니라고 할 수 있다. 백열 전구를 그 안에 넣고 전자 레인지를 작동시키면 전선을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이런 실험은 매우 위험하므로 함부로 가정에서 시도해서는 안된다).
아직까지 전자파가 인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62년, 미국의 CIA는 소련의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전파가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전파는 레이더와 같은 초단파였으며 당시 미국 보건 당국에서 규정한 전자파의 유해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강도였다(미국은 60년대에 「노출된 피부 1㎠당 0.01W 이하의 전자파는 안전하다」는 지침을 마련했다).
CIA에서는 모스크바의 괴 전파와 똑같은 조건을 재현하여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3주일이 채 지나기 전에 실험 동물들의 신경 조직과 면역 기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
대사관 직원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CIA는 직원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분석을 실시했다.
당시 직원들에게는 「모스크바의 상수도 물에 섞인 유해 성분을 조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혈액을 채취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 직원의 3분의 1 가량은 정상인보다 50% 정도나 많은 백혈구를 지니고 있었다. 백혈구 수의 이상 증가는 여러 가지 감염성 질병이나 백혈병 등의 조짐이 된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대사관에 전자파 차단 막을 설치한 것은 자그마치 14년이나 지난 76년의 일이었다. 그동안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암 발생률은 평균 이상이었고, 대사들 중에도 두 명이 암으로 사망했다. 이 모스크바의 괴 전파는 79년에 갑자기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에서는 송전탑과 같은 대규모 군용, 산업용 전기 시설의 건축이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 시위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전자파 공해는 거대 기업체들의 로비와 홍보 등으로 그 잠재적 위험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뒤에 뒤늦게 대기 오염을 걱정하게 되었듯이 전자파 공해 역시 나중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상황이 벌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되는 대목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