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우주 개발을 현실 문제와는 거리가 먼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주로 내보내는 Q채널이 지난 18일부터 방송하고 있는 「생활 속의 우주공학」을 단 한편이라도 시청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생각이 상당한 잘못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특히 세계 최대의 발명가 집단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만들어낸 우주기술이 점차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계는 물론 일반 시청자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흔히 세계 최대의 발명가 집단으로 통하는 NASA의 신기술이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숨쉬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스키어들이 착용하는 안경에는 우주선의 창에 바르는 방습도료가 발라져 있다. 우주공간은 매우 춥기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우주선 내부와의 온도 차이가 매우 크다. 그래서 창에는 언제나 성에가 낀다. 또 우주비행사가 선외활동을 할 때 머리에 쓰는 헬멧에도 성에가 낄 수 있다. NASA의 존슨우주센터가 수증기가 얼어붙지 않는 특수한 도료를 만들어야 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도료는 곧바로 스키안경에 활용됐으며 해안 경비대의 쌍안경, 잠수용 마스크, 소방대원의 내화(耐火) 헬멧, 자동차의 서리 방지용 유리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스키어들이 착용하는 신발도 비슷한 경우다. 우주복의 용도는 초진공, 초저온에서 우주 비행사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관절부분이다. 이곳은 견고하면서도 활동성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NASA의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뱀에게서 찾았다. 뱀의 몸은 수많은 고리가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우주복의 목, 어깨, 팔, 발 등을 자유롭게 움직여야 하는 곳을 고리 모양으로 연결했다. 이렇게 해서 극한 상황에서도 견고함과 활동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것이다.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눈으로 문자를 입력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아폴로 11호 때 처음 개발됐다. 우주선이 발사될 때 우주비행사들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꽁꽁 묶는다. 만약 이때 사고라도 난다면 비상탈출을 어떻게 해야 할까.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동자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NASA의 기술진들은 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스위치를 개발했다. 우주 비행사들은 순전히 목숨을 건지기 위해 지금도 안구를 움직여 스위치를 작동하는 훈련을 받고 있다.
레이저빔 기술이 민간부문에 이전된 과정도, 눈으로 문자를 입력하는 것 못지 않게 재미있다. 빛이 흩어지지 않고 직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레이저 기술이 우주 탐험에 처음 도입된 것은 아폴로 계획 때였다. 아폴로 11호부터 아폴로 17호까지 달에 착륙한 우주선들은 달에 레이저빔 반사경을 설치했다. 그 후 20여년 동안 과학자들은 달에 레이저빔을 쏘아 거리를 측정했다. 이러한 연구결과 달은 매년 3.8㎝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개발된 레이저 기술은 곧바로 민간으로 이전돼 통신기기는 물론 미세한 구멍을 뚫는 기계장치, 최근에는 수술하지 않고도 아픈 부위만 골라 전혀 상처가 나지 않게 절단할 수 있는 의료장비 등의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상품은 대부분 NASA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NASA는 그동안 수많은 기술을 민간에 제공해왔다. NASA가 지금까지 민간으로 넘긴 기술은 3만여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또 이 기술 중에는 다시 개선돼 NASA로 들어간 것도 많다.
NASA가 보유기술을 민간으로 적극적으로 이전하기 시작한 것은 73년의 일이다. 이때 민간으로 넘어간 기술 중에는 바이킹이 화성에서 사용했던 자동 박테리아 검출기도 포함돼 있다. 그 후 NASA는 10개의 연구소에 기술이전 센터와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