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없는 네트워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해초 미국에서 열린 가전쇼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유니버설 플러그 앤드 플레이」 기술을 발표한 데 이어 선마이크로시스템스는 지난 25일 「지니(Jini)」기술을 발표해 컴퓨터 없는 네트워크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컴퓨터 없는 네트워크란 말 그대로 컴퓨터를 중심으로 다른 컴퓨터나 프린터 등의 장치를 연결하는 기존 개념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TV와 VCR, 디지털 카메라와 프린터 등 디지털 장치간에 직접 네트워킹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지니는 「자바코드를 이용한 네트워크 기술」로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자바를 개발하면서 추진해왔던 「모든 디지털 기기의 네트워크화」를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미 가전·휴대폰·컴퓨터·소프트웨어 등 각 분야 39개 기업이 지니의 지원을 선언하고 나서는 등 전세계 산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니의 구성과 작동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지니는 크게 3가지 구성요소로 이뤄져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서버 역할을 담당해 지니가 설치된 각종 장비를 제어하는 「룩업서비스(Lookup Service)」와 이 룩업서비스를 찾아 필요한 네트워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각 장치에 설치된 「에이전트」, 그리고 운용체계의 간섭 없이 이 두 부분을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프로토콜」 등이다.
TV나 PC 등 네트워크 센터에 설치된 룩업서비스는 지니가 장착된 네트워크 단말기를 항상 감시하고 있다가 이 룩업서비스와 연결된 네트워크에 지니 에이전트를 탑재한 장치가 연결되면 자동으로 인증절차를 거쳐 네트워크 연결을 이루게 된다. 일단 네트워크 연결이 이뤄지면 사용자가 수동으로 조작할 필요없이 룩업서비스와 에이전트간에 자동으로 작업에 필요한 인터페이스가 설치된다. 즉 「자동 네트워킹(Spontaneous Networking)」이 구현되는 것이다.
이 네트워크는 인터넷·네트웨어 등 현존하는 유선 네트워크 프로토콜을 거의 다 이용할 수 있으며, 적외선 프로토콜 등 무선 프로토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된다. 현재 가전제품과 PC를 연결하는 비슷한 표준인 IEEE 1394 네트워크에도 이용할 수 있다.
이같은 통합 네트워크망이 완성되면 응용분야가 엄청나게 넓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업가가 자신의 노트북PC를 들고 출장을 갔을 때 호텔이나 지사 등에 설치된 프린터에 일정한 비용만 지불하면 별도의 드라이버 설치절차 없이 급한 문서를 출력할 수 있다.
또 레스토랑 앞에서 자신의 개인휴대단말기(PDA)를 보면 그 식당이 제공하는 메뉴와 음식의 가격을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음식값도 PDA에 설치된 전자화폐로 결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가정에서는 디지털기기라면 모두 한곳에서 조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TV를 센터로 해서 가정용 조명의 불빛 조정, 에어컨의 세기 조절, 오디오· 비디오 기기의 조종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가정용 센터를 인터넷 등과 연동시키면 외부에서 휴대폰을 이용해 예약녹화를 하거나 가정용 조리기구를 작동시킬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예들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프린터와 관련해서는 HP와 엡손이, PDA와 관련한 솔루션은 팜파일럿을 만든 스리콤 팜컴퓨팅사가, 가정용 기구의 자동화는 삼성 등이 제품개발을 이미 완료했거나 가까운 시일 안에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특히 가전제품과 관련해서는 소니와 필립스가 주도해 오디오비디오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홈네트워크 표준인 HAVi(Home Audio-Video Interoperability)에 지니를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AOL 애니웨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최대의 온라인 통신서비스인 아메리카온라인사(AOL)도 자사의 온라인서비스 단말기에 지니를 탑재하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전통적인 컴퓨터와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IBM·컴퓨터 어소시에이츠·퀀텀·시게이트사 등이 지니 지원 솔루션 개발에 나섰고, 특히 노벨은 자사의 네트워크 디렉토리서비스(NDS) 솔루션에 지니를 탑재한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도 이미 자사의 홈와이드웹 솔루션에 지니를 탑재하겠다고 밝힌 삼성을 비롯한 몇몇 업체들도 적극적으로 자사의 제품에 지니를 탑재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서만석 차장은 『현재 몇몇 업체들과 협의중에 있으며 올해말이나 내년초쯤이면 가시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응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유니버설 플러그 앤드 플레이도 지니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PC에서 운용체계가 각종 주변기기를 자동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플러그 앤드 플레이를 다른 디지털 장치에도 적용하려는 것이 유니버설 플러그 앤드 플레이의 기본개념이다.
이를 위해 MS는 인터넷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한 기존 PC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한다는 방향을 설정해 놓고 있다.
지니나 유니버설 플러그 앤드 플레이 모두 기존 컴퓨터업계에서는 가장 큰 골칫거리인 드라이버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에는 그래픽·사운드카드·하드디스크·프린터·스캐너 등 주변장치를 설치할 때마다 새로운 드라이버를 설치해야 했고, 이에 따르는 문제발생이 AS비용 등 관련업계에 많은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이들 기술을 이용하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하드웨어의 연결이 쉬워질 수 있기 때문에 업계의 비용과 소비자의 노력이 대폭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니와 유니버설 플러그 앤드 플레이 이외에도 HP의 프린터 관련 솔루션인 「젯센드(JetSend)」, IBM의 「T 스페이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사의 「인페르노」, MS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밀레니엄」 등도 컴퓨팅 환경내 혹은 기타 디지털 장치간 연결을 위한 기술들로 이미 응용제품이 출시되거나 출시될 예정이어서 세계는 점점 네트워크화의 길로 깊숙이 접어들고 있다.
<구정회기자 jh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