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출판그룹인 베텔스만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책을 60∼80% 할인한 가격으로 통신판매한다는 홍보전단을 강남·목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에 대량으로 살포함으로써 국내 출판유통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베텔스만은 북클럽 회원에 가입하면 베스트셀러들을 1천5백원에 우송해준다며 현재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또 이 전단에 수록된 책의 종류도 길벗출판사가 최근 펴낸 「홈페이지 무작정 따라하기」를 비롯해 「링」 「광수생각」 「아내의 상자」 등 소설·비소설·실용서를 총망라하고 있어 국내 출판계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베텔스만 한국지사 관계자는 『시장조사 차원에서 홍보전단을 돌렸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회원에 가입하면 책을 보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출판계는 초긴장 상태다.
회원 가입비도 없는데다 서점에서 책을 1권 사는 값이면 베텔스만에서는 5, 6권의 책을 집까지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베텔스만의 북클럽시스템이 국내에 정착될 경우 서점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출판유통 자체가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베텔스만은 음반회사인 BMG와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등을 거느린 미디어그룹으로 55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데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지역에도 진출, 불과 2년만에 5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도서 정가제가 출판사와 서점간 협약에 의해 한시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할인점들의 책 판매 증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폐지 요구, 베텔스만의 파격적인 할인공세까지 가세함으로써 앞으로 도서 정가제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까르푸와 E마트 등 할인점의 경우 2∼3년 전부터 책의 정가를 10∼20% 할인해주는 방법으로 신도시지역 상권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또 와우북을 비롯해 최근 인터넷에 우후죽순처럼 설립되고 있는 쇼핑몰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30% 정도 책의 판매가격을 할인해줌으로써 네티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출판사 관계자들의 반응은 착잡하기만 하다. 길벗의 이종원 사장은 『베텔스만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며 『앞으로 총판·도매상 등과도 긴밀하게 협조해 우리 책의 덤핑판매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할인점과 가상 쇼핑몰에서 책을 구입하는 독자들이 더욱 늘어나면 도서 정가제도 이에 맞춰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황인석 와우북 사장은 『인터넷 서점은 새로운 형태의 유통채널』이라며 『우리가 불과 몇 년 사이에 39쇼핑 등 새로운 통신판매 회사들이 제품가격을 20∼30% 정도 할인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터넷 서점도 책 가격을 할인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K출판사 등 대학교재를 주로 펴내는 출판사들의 경우 IMF 이후 학생들의 교재구입 비율이 80%에서 50%까지 뚝 떨어졌다며 울상을 짓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불거져 나오는 도서 정가제를 둘러싼 논쟁은 이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갈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출판계로서는 이래저래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